[한스경제 허인혜] 카드업계가 빚 탕감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가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대책을 발표하며 ‘세금으로 빚 탕감’이라는 비판을 우려해 금융사로부터 필요 재원을 기부받겠다고 밝히면서다. 카드론 비판과 카드수수료 인하로 전통 수입원이 쪼그라든 카드사들은 재원 마련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여신금융협회는 최근 카드업계의 장기소액연체자 지원 기부금 현황을 점검하는 회의를 치렀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현재는 출연 기금에 대한 현황 점검만 마친 상황”이라며 “각 사별 출연금 등 구체적인 사안은 아직 논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민간 금융사인 카드업계가 기부금 출연에 팔을 걷은 이유는 정부가 “연체채권 소각에 필요한 예산은 금융사의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충당하겠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76만2,000명의 장기·소액채권(공공기관 12만7,000명, 민간 금융회사 63만5,000명)을 대상으로 재단법인을 설립해 채권을 사들여 심사한다. 전신인 국민행복기금이 세금으로 빚을 탕감해준다는 논란에 빠지면서 금융사 출연으로 방향키를 튼 것으로 풀이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지원대책을 발표하며 “민간 보유 장기소액연체채권의 매입비용은 금융회사의 자발적인 출연 및 기부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라며 “이미 국민행복기금 보유 약정채권 매각대금 등을 배분 받는 회사들에게 자율적인 기부에 대한 협조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국민행복기금의 채권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들이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채권은 카드사 등 민간 금융사들이 부실채권으로 매각한 것으로, 캠코가 이 채권을 인수하면 각 금융사에 일정 대금이 떨어지게 된다. 정부는 금융사가 받은 대금에서 기부금을 모아 장기소액연체채권 소각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카드사별로 채권 매각 이익이 판이하다는 점이다. 국민행복기금이 2013년 출범하면서 카드사들은 상당수 부실채권을 당해 상반기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카드사별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차이를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장기연체채권, 소액채권이라 휴지조각이라고 하지만 빚 탕감 금액에 관계 없이 빚을 없애준다는 정책 자체가 주는 메시지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최 위원장은 “현실적으로 도저히 자기 힘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방치하는 것은 이런 고통까지 가보지 않은 비교적 여유 있는 사람들의 또 다른 도덕적 해이”라고 강조했다.

카드사들의 수익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암초다.

카드사들은 지난 8월부터 우대 수수료를 받는 영세·중소카드가맹점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수익 하락을 걱정해 왔다. 슬금슬금 내려앉던 영업이익과 순수익이 3분기 곤두박질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카드론도 조달금리 인상과 대출·연체금리 조정으로 수익 축소가 불가피하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하는 정책으로 이해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빚 탕감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도 있는 만큼 최대한 감안해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허인혜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