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채무자 개개인의 상환능력을 고려한 채무자 중심의 제도로 탈바꿈해야"

[한스경제=김서연 기자] “채무 금액에 따라 기계적으로 감면율을 산정해 적용할 것이 아니라 채무자 개개인의 상환능력을 고려한 채무자 중심의 제도로 탈바꿈해야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

금융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금융정책 기조인 생산적·포용적 금융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금융당국은 은행 자금의 물꼬를 가계에서 기업으로 틀라는 취지에서 ‘생산적 금융’을, 채권자 중심 사고에서 채무자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고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라는 취지에서 ‘포용적 금융’을 강조한 바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6월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 채권·채무자 보호 장치는

오랫동안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영세한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돕기 위해 마련된 장치들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장기소액 연체자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금융회사 등에 연체가 10년 이상 돼있고, 원금 1000만원 이하의 빚이 있지만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이 지원대상이다.

금융위원회 주도 하에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소액연체채권을 매입해 정리하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이 지난 2월 출범했다. 당국이 장기 소액 연체자 채권을 사들여 채무를 탕감해주는 목적에서다. 재단은 금융회사의 장기소액연체채권 매입·소각 등 신용회복지원 사업, 서민금융사업 등에 대한 지원 등 역할을 맡는다. 당초 오는 8월 말까지 약 6개월에 걸쳐 신청을 받기로 했으나, 금융위원회는 22일 관계기관 회의를 열어 이 기한을 6개월 늘려 내년 2월 말까지 받는다. 이달 말로 종료되는 1차 접수에 대해선 대상 여부 및 상환능력 심사결과 등을 10월 말까지 통보한다. 정부는 장기 연체자 46만여명을 대상으로 빚 독촉을 중단하거나 채무를 탕감하겠다고 지난 1월 밝힌 바 있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관리공사 서울서부지역본부에서 열린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 출범식'에서 최종구 금융위원장 (앞줄 오른쪽 네번째부터), 양혁승 장기소액연체자 지원재단 이사장,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협약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월부터는 프리워크아웃 성실상환자들을 대상으로 금리를 감면해준다. 프리워크아웃(pre-workout·사전채무조정)은 1~3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자의 채무를 신용회복위원회와 채권금융회사 간 협의를 거쳐 조정해 주는 신용회복지원제도를 말한다.

현재 프리워크아웃시 기존 채무 금리의 1/2 이하로 감면 조정되나, 제도 개선으로 조정된 금리가 추가로 인하된다. 24개월을 성실하게 상환하면 20%를 추가 인하하고, 48개월을 성실하게 상환하면 여기서 20%를 추가 인하한다. 예를 들어 10% 금리라면 24개월 상환시 10%의 20%(2%포인트)가 낮아진 8.0%로 인하되고, 48개월 상환시 8.0%의 20%(1.6%포인트)가 낮아진 6.4%로 인하된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프리워크아웃 신청자는 다소 늘었다. 신용회복지원 실적자료를 보면 올해 상반기 채무조정 신청자는 5만362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6%(435명) 증가했다. 이중 개인워크아웃은 4만252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7%(1169명) 감소했다. 프리워크아웃은 15.8%(1514명) 늘어난 1만1092명으로 집계됐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금융 지원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채무자회생법 개정안 통과로 지난 6월부터는 개인회생 변제 기간이 최장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다. 개인회생은 채무자가 법원의 관리로 5년 동안 채무 변제계획에 따라 빚을 갚았으나 이 기간이 3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지난 5월 열린 신용회복지원 정책 간담회에서 “변제 기간 단축은 채무자 상환부담 감소와 채권자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며 “채무불이행은 상환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채권자에게도 책임이 있어 채권자 이익보다 채무자의 회생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용회복위원회도 채무자 친화적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법원과의 연계를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용질서 유지·채무자 회생, 두 가치가 균형 잡아야 

이외에도 채무자들을 위한 제도들이 많이 마련돼 있고, 또 마련될 예정이지만 여전히 이를 이용하려는 금융소비자가 넘어야 할 문턱은 높고 이용하는 금융소비자도 턱없이 적은 편이어서 진정한 서민금융은 요원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금융위에 따르면 현재까지 신청자는 국민행복기금 채무자 2만5000명, 금융권 채무자 2만8000명을 합한 5만3000명이다. 애초 장기·소액연체 채무자는 119만명으로 집계된 점을 미뤄봤을 때 신청자는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장기소액 연체자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포용적 금융으로 서민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나왔으나 기준이 너무 깐깐해 수혜를 입을 ‘서민’의 폭이 너무 작다는 지적이다. 연체 발생 시점이 2007년 10월 31일 이전인 가운데 재산이 없고 소득이 중위소득의 60%(1인가구 기준 월소득 약 100만원) 이하인 사람이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금융위원회

당국의 정책 홍보가 부족했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제도가 있는지도 모를뿐더러, 정책 수혜 대상이 지원을 신청을 완료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관문이 많고 제대로 설명도 돼있지 않다. 대상자에 해당하지만 제도를 알지 못한 ‘성실상환자’ 사각지대가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기 소액 연체자가 공식적으로 지원 신청을 하려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관리하는 인터넷 개인 신용 지원 사이트인 ‘온크레딧’(www.oncredit.or.kr)에 접속하거나 캠코 지역본부 26곳 또는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 42곳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준비서류도 8가지에 달하는데 발급처도 제각각이라 알아도 쉽지 않고 신청을 하려고 해도 ‘월소득 약 100만원 이하’ 기준에 걸리는 실정이다.

도덕적 해이 우려 역시 빠지지 않는 논란이다. 채무를 완전히 없애준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은행 관계자는 “장기 소액 연체자 지원 재단에 재원은 은행 등 금융사들이 내고 있다”면서 “이같은 입장에서 채무 100% 탕감이라는 것은 선뜻 납득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채무 조정을 통해 경제적 재기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은 몰라도 (탕감을 해주려면) 최소한 심사과정에서 이 채무자가 어떤 이유로 빚을 졌는지 꼼꼼한 실태파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연대회의 관계자는 이같은 정책에 대해 “채무상환에 방점을 찍는 등 기존의 채권자 중심의 가계부채 문제 대응 정책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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