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2살인 일본 축구스타 미우라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심재희 기자] 백발이 무성한 50대 선수가 여전히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다. 일본의 축구 스타 미우라 가즈요시(52·요코하마 FC)가 그 주인공이다. 미우라는 7일 아비스파 후쿠오카와 J2리그 8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52분을 소화했다. J리그 최고령 출전기록을 52세 1개월 12일로 다시 늘렸다.
 
미우라는 1990년대 일본 축구의 중흥을 이끈 슈퍼스타다. 어린 시절 브라질에서 축구를 배워 기본기를 익힌 그는 산투스 FC 등 브라질 클럽을 거친 뒤 1990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빠른 발과 출중한 개인기, 슈팅력, 득점력 등을 자랑하며 J리그 톱스타로 떠올랐고, 1990년대 일본 대표팀의 간판골잡이로 활약했다. 그런 그가 33년째 프로 선수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실, 미우라를 참 싫어했다. 1990년대 학창 시절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던 필자는 일본의 성장세를 애써 부인하면서 한일전에서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우라를 중심축으로 한 일본은 예전의 일본이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곱게 반으로 가른 미우라는 왼발 오른발 머리 가리지 않고 정확하고 강력한 슈팅을 날리고, 헛다리 드리블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한국 수비수들을 괴롭했다. 브라질에서도 인정 받았던 멋진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한국 축구를 위협했다.
 
1980년대까지 일본을 압도했던 한국은 1990년 초반부터 미우라의 등장과 함께 위기감을 느꼈다. 당시 대표팀은 일본 축구를 한 수 아래로 여기다가 미우라에게 혼쭐이 났다. 1990년 7~8월에 중국 베이징서 펼쳐진 다이너스티컵 결승전에서 미우라가 이끈 일본에 승부차기 끝에 졌다. 1993년 10월 카타르 도하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1993년) 경기에서는 미우라에게 결승골을 얻어맞고 0-1로 무릎을 꿇었다. 기록을 좀 더 찾아 보니, 미우라는 '한국 킬러'였다. A매치에서 한국을 상대로 3골, 북한을 상대로 3골을 터뜨렸다.
 
미우라는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도중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부진과 부상이 겹쳐 월드컵 꿈을 접었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은 계속 불태웠다. 해외 진출, 풋살 전향, 부상 은퇴, 현역 복귀, 호주무대 진출 등을 이어가며 여전히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전성기 기량에 한참 못 미치지만 '축구 팔순 잔치'를 펼치고 있다. 최고령 출전기록을 세운 7일 경기에서는 자신보다 35살이나 어린 17세 공격수 고키 사이토와 함께 뛰었다.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로베르토 바지오(이탈리아), 클라우디오 카니자(아르헨티나), 마티아스 잠머(독일), 다비드 지놀라(프랑스), 폴 게스코인(잉글랜드). 세계적인 기량을 자랑하며 한시대를 풍미했던 왕년의 축구 스타들이다. 이제는 게임 속의 클래식 팀에서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축구 전설들이 미우라와 같은 1967년 생이다. '52살 현역'으로 여전히 식지 않은 축구 열정을 뽐내고 있는 미우라. 그의 무한도전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심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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