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20만 쪽에 달하는 자료와 8시간의 심문에도 혐의 입증 못해
8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한스경제=김창권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후폭풍이 예상된다.

특히 법조계 일각에서도 검찰이 1년 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수사를 진행했음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돼 애초부터 무리한 수사가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원, 피의자 구속할 필요성에 대한 소명부족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8일 오전 이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시작된 지 약 16시간 만인 9일 새벽 2시경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에 대한 구속영장도 이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기각됐다.

원 판사는 기각 사유에 대해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인다. 그러나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판단된다”며 향후 있을 재판에 판단을 맡겼다.

이에 따라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법원은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등 검찰이 이 부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한 만큼 향후 정식 재판 과정에서 검찰과 이 부회장 사이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영장심사 기각 후 삼성 측 변호인단은 “법원의 기각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로 향후 검찰 수사 심의 절차에서 엄정한 심의를 거쳐 수사 계속과 기소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찰 측은 “본 사안의 중대성, 지금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등에 비추어 법원의 기각 결정을 아쉽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영장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향후 수사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 관여 혐의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독'으로 작용할 수도

이번 심리에서는 검찰이 무려 400권, 20만쪽 분량의 수사기록을 제출했고,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에만 장장 8시간 30분에 걸쳐 이뤄졌지만, 법원이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검찰이 애초에 무리한 기소를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관련 수사가 1년 8개월간 진행됐는데, 검찰이 주장한 증거 인멸 우려가 있었다면 이제서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점이 의아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검찰은 이 부회장 등의 구속이 반드시 필요할 정도로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예측되면서 향후 다툼의 여지만 남기게 됐다.

앞서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 3일 삼성 합병과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제 3자의 관점에서 기소의 타당성을 판단해달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검찰은 다음날인 4일 이 부회장의 구속 영장을 곧바로 신청하면서 삼성을 압박하기 위해 무리한 기소를 진행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이번에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검찰 측의 수사 정당성도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개혁안으로 꺼내든 제도로, 대형 사건의 수사와 기소를 검찰이 아닌 시민이 심의하는 것으로 검찰시민위원 가운데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15명으로 기소와 불기소를 판단한다.

다만 수사심의위가 내리는 기소 여부 판단은 권고적 효력만 있고, 실질적인 강제성은 없지만 대부분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결정을 따랐던 만큼 향후 재판에서도 영향은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검찰이 삼성의 수사심의위 신청에 곧바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을 두고 자체 개혁안인 수사심의위를 무색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한 것”이라며 “이번 기각 결정으로 삼성에서는 향후 있을 수사심의위에 집중하면서도 사회적 신뢰 회복에 만전을 기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이 자신했던 혐의 입증에 제동이 걸리면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부의심의위원회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가 진행되는 중에 오는 11일 부의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심의위에 회부하는 안건을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삼성과 검찰 측은 수사심의위에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그간의 입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 준비에 돌입했다. 다만 수사심의위에서는 이날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의견을 달았던 만큼 불기소 권고를 내릴 것이란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김창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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