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과도한 상품 판매 규제와 모호한 개념에 은행 직원·고객 불만 폭발
금융소비자보호법의 과도한 상품 판매 규제와 모호한 개념으로 은행 직원과 고객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연합뉴스

[한스경제=김형일 기자] #1. 은행 직원 A씨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 후 웃지 못 할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주택구매자금이나 전세금 마련을 위해 영업점을 찾은 고객과 서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자주 연출된다고 토로했다. 또 대출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대출이 나가더라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2.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기업고객 B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주문량이 급감한 상황에서도 직원 월급은 줘야하기 때문에 대출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러면서 자산보다 부채가 많으면 일부 담보대출을 제외하고는 대출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실감난다고 호소했다. 

금소법이 시행되면서 은행 직원과 고객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소법 관련 안내 자료와 시행세칙 공문을 발송했지만, 여전히 법령해석을 놓고 모호한 개념이 많기 때문이다.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금소법은 금융소비자가 낯선 금융상품에 가입했다가 손해를 보는 일을 줄이기 위해 마련된 법으로 그간 일부 상품에만 적용됐던 6대 판매규제(적합성 원칙·적정성 원칙·설명의무 준수·불공정영업행위 금지·부당권유행위 금지·허위과장 광고 금지)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금소법 시행에 맞춰 금소법에 대한 질의응답 자료를 제공했다. 앞서 금융위가 지난 2월 18일과 3월 17일 두 차례 자주 묻는 질문(FAQ)을 웹에 게시한 것에 이어 추가로 배포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일례로 금융당국은 이번에 상품숙지의무의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소개했다. 금소법 시행령에는 ‘내부통제기준에 따른 직무수행 교육을 받지 않은 자가 계약체결 권유와 관련된 업무를 하게 하는 행위’를 부당권유행위로 본다고 설명했다.

또 상품숙지의무 이행여부에 대한 판단은 금융사가 개별 금융상품에 필요한 직무교육 사항을 내규로 정해 이행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직무교육 사항은 금융사가 상품의 내용, 소비자보호 정책 등을 고려해 자율적으로 정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핵심설명서에 포함해야 할 사항도 안내했다. ▲유사한 금융상품과 차별화되는 특징 ▲계약 후 발생 가능한 불이익에 관한 사항 ▲민원을 제기하거나 상담을 요청하려는 경우 이용 가능한 연락처 등을 예로 들었다. 

금소법 감독규정에는 두꺼운 설명서에 적힌 내용을 소비자가 충분히 파악하기 힘들다고 판단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서 맨 앞에 중요사항을 요약한 내용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금융당국이 금소법과 관련된 내용을 공지하고 있지만 영업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금융당국이 뒤늦게 가이드라인을 내놓으면서 일부 해결할 수 있었던 부분도 놓치게 됐다고 비판했다. 

주요 시중은행은 키오스크(무인 단말기) 등을 통한 상품 신규 판매를 일시 중단했다. KB국민은행은 다음 달 30일까지 STM(스마트 텔러 머신)에서 입출금 통장 신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STM은 일반 ATM(현금출납기) 기능에 통장·체크카드 신규 발급, 통장 재발행 등의 서비스까지 가능한 기기다. 

금소법에는 입출금 통장을 새로 만들 때 약관, 상품설명서, 계약서를 고객에게 줘야 한다. 그러나 현재 STM에서 수십 쪽에 달하는 설명서를 교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민은행은 전자메일로 전달하는 시스템 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서비스를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도 STM과 유사한 ‘유어스마트라운지(YSL)’ 내 서비스 중 상품 신규·해지 서비스 등을 중단했다. 중단 기한은 상품설명서 교부 등 금소법에 맞춰 시스템을 갖출 때까지로 전해졌다. 신한은행은 거점 점포 등에 총 37대의 YSL을 운영 중이다. 

우리은행도 키오스크를 통한 예금과 펀드의 신규 판매, 신용카드 신규 발급 등을 멈췄다. 우리은행은 다음 달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은행은 키오스크 40여대를 가동해왔다. 

하나은행도 ‘하이로보’의 펀드 신규·리밸런싱(재조정) 거래를 오는 5월9일까지 일시 중단한다. 하이로보는 로봇이 맞춤 펀드를 추천해주는 시스템으로 하나은행은 금소법 시행에 따라 하이로보의 마켓 포트폴리오 구성 관련 알고리즘 및 펀드 가입 프로세스를 변경하기 위해 중단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6일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한 점이 다소 있더라도 불완전판매라는 과거의 나쁜 관행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며 “금융 소비자 보호를 더욱 굳건히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는 금융사가 금융 상품에 관한 기본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 따위에 대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고 고객에게 금융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다. 

김형일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