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정부,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급단지 만드는 'K반도체' 구상
삼성전자 미국 오스틴 반도체 공장 전경 /삼성전자

[한스경제=김창권 기자] 최근 미국의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시작된 공급 부족 현상이 전 세계 산업계로 확산되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일제히 투자를 늘리며, 생산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히는 등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K-반도체’ 전략에 따라 세액공제 확대·금융·인프라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기업들은 오는 2030년까지 510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이처럼 반도체 주력 기업들이 투자 확대에 나서는 이유는 반도체 분야가 국내 수출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의 틈바구니에 낀 한국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전략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관세청이 공개한 ‘4월 월간 수출입 현황’을 보면 업종별 제조업 생산지수 가운데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9%에 달했다. 이 기간 전체 수출은 512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1.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반도체 수출액은 95억2000만 달러로 29%가 증가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산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국내 산업 중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해 한국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보안이슈를 이유로 화웨이에 제재를 가하자 반도체 공급이 중단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지만, 중국에서도 쉽사리 나서지 못하면서 화웨이의 주력 업종인 스마트폰과 PC, 서버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미국은 공급망 조사 행정명령과 함께 올해 1월 자국 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조금, R&D 지원 등이 포함된 국방수권법(NDAA)을 발효했다. 이에 미국 상원은 향후 5년간 미국의 반도체 생산과 연구를 진흥하기 위해 520억달러, 약 59조원을 지원하는 법안을 조만간 발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강화를 내세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른바 ‘바이 아메리카’ 정책을 점차 강화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실리콘 웨이퍼를 꺼내 들고 반도체 인프라를 강조했다.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대해 단순히 경제적 상황만 고려한 것이 아닌 안보 등과 직결되는 산업전략으로 바라보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참여에 한국 기업들도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완성차 업계가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으며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인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자동차 생산 차질 규모가 39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월에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매출 손실과 생산 차질 규모를 각각 610억달러와 220만대로 예상했다.

이에 미국 완성차 업계에서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로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파운드리 업계 1위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을 불러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후 대만 TSMC는 향후 3년간 1390억달러(약 157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발표했고, 인텔은 200억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애리조나주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을 내놨다.

삼성전자 역시 한미정상회담 전에 텍사스주 오스틴에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파운드리 공장 증설 계획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현장에 마련된 야외무대에서 열린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내 ‘K-반도체’로 미·중 패권 경쟁에 대응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및 배터리 등 핵심제품에 대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자 반도체 산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자 국내에서도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K-반도체 벨트’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지난 1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를 열고 1조원 이상의 설비투자 특별자금 신설과 함께 세액공제 확대·금융지원·인프라 등을 패키지로 지원해 민간투자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반도체 수급 불안 해소에 기여하고 향후 미래 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종합 반도체 강국 실현을 위해 정부는 10년간 전문인력 양성을 통해 반도체 전공자를 대폭 충원하고,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된 한국 반도체 기술을 팹리스, 패키징, 시스템반도체 개발 등으로 확장해 국내에 세계 최대·최첨단 반도체 공급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번 전략의 핵심이다.

이번 대책은 경기 판교·화성·평택과 충남 천안을 잇는 중심축에 북동쪽으로 경기 이천·용인, 남동쪽으로는 충북 청주로 이어지는 ‘K자’ 모양으로 연결되는 점에 착안해 ‘K-반도체 벨트’ 지원책으로도 불린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2030년까지 171조 원을 투자한다.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발표 당시 계획(133조 원)보다 약 38조 원이 늘어난 규모다. 이를 통해 파운드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목표로 경쟁에 나선다.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도 차량용 반도체에 많이 쓰이는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투자하는 등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능력을 키운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자회사인 SK하이닉스시스템IC가 중국에서 파운드리 사업을 운영 중이지만 비메모리 사업 비중은 전체 매출에서 2% 수준에 불과하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글로벌 반도체 수급 불안정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증설 또는 M&A까지 고려해 현재보다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며 비메모리반도체 시장 주도권 확보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파운드리 분야 확대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등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생산 라인을 교체하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 스마트폰용 반도체 생산 대비 손익이 낮아 투자 대비 비용 부담이 크다는 데 있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1위지만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세계 시장 점유율이 2.3%에 불과한 이유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 라인은 수익성 높은 12인치 공정 위주로,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운드리 분야 확대는 향후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 등으로 차량용 반도체가 고성능으로 갈수록 수익성도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주요 품목 중 하나인 이미지센서는 스마트폰에 주로 활용돼 왔으나 최근 자율주행차, 로봇 등으로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또한 파운드리 투자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에서도 다소 자유로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만 TSMC가 미국에 투자를 나서며 중국의 눈치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반도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내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고 있어 중국이 대응에 나서지 못했던 만큼 한국도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선 이번 투자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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