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송남석] 순항하던 KT ‘황창규호’가 정권 말 ‘최순실 게이트’에 단단히 발목 잡혔다. 황 회장은 취임 초 “정치적 낙하산 인사를 받지 않겠다”고 공언하며 사내에 강한 개혁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또다시 정권의 외압에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이번에도 낙하산 인사와 비리란 정경유착의 고질병이 도졌다. 4년 가까이 가속페달을 밟아온 구조조정과 경영안정 등 가시적인 성과도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위기다.

황창규 회장이 누구인가. 삼성전자 사장 시절 ‘황의 법칙’이란 신화를 썼던 인물이다. 당연히 출발부터 임직원들은 물론 사회적 기대가 남달랐다. 2014년 1월 KT 키를 쥔 황 회장은 전임 이석채 회장이 벌려놓은 문어발식 계열사 정리부터 손을 댔다. 외부 전문가 영입보다 내부 인력 양성이란 기치도 내걸었다. 최소한 외압에 굴하지 않는 성과경영을 해 낼 적임자라는 찬사도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2013년말 3만1500여명에 달하던 KT 임직원 수는 올 9월말 2만3600여명으로 구조조정 됐다. 22조원에 육박하던 부채는 3년 만에 17조4700억원까지 20%나 줄었다. KT렌탈과 KT캐피탈을 매각하면서 비대해진 계열사도 과감하게 정리했다. 취임 첫 해 적자를 냈지만 이듬해에는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매년 굵직한 성과도 올렸다.

2015년에는 정부 재난망사업 수주,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권 획득, 통신 주파수 확보라는 과실에 무선과 미디어사업, 유선통신 등 사업 전반에 탄력이 붙었다. 구조조정과 조직개편이 효과를 보기 시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올 한해 실적은 누가 보더라도 황 회장 연임론의 강력한 엔진이었다. 2분기에는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처음으로 분기매출과 영업이익에서 SK텔레콤을 제쳤다. 3분기에도 4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연간 누적 영업이익도 1조2000억원을 넘겼다. KT가 2분기 연속 4000억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2011년 이후 5년만의 일이다.

거기에 LG유플러스와 연합, 사활을 걸었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저지는 일대 사건이었다. 황 회장은 연임 의사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KT는 ‘순풍노도’의 항해를 거듭하고 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장 연임과 12월 연말인사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최순실 게이트만 없었다면 이번 연말은….” 황 회장을 포함한 임직원들의 속 마음일거다.

이번 메가톤급 외풍은 공든 탑을 너무 쉽게 흔들어 놨다. 회장 연임 여부는 물론 KT 내부 분위기조차 어수선하다. 이미 개혁의 동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최고경영책임자로서 KT를 강요의 ‘피해자’로 만든 황 회장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들린다.

무엇보다 검찰이 법원에 낸 공소장 내용이 벌써 2차례나 온 국민 앞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충격은 크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국민들의 뇌리 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수 밖에 없다. 내년 3월 임기만료를 앞두고 연임을 그리던 황 회장으로서는 리더십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셈이다. 다만, ‘황 회장인들 VIP로부터 내려온 족집게 식 인사 청탁을 홀로 막아낼 수 있었을까’라는 부분은 여백으로 남는다.

결국, 낙하산 인사 관행이 만들어낸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외국에서 CEO와 이사회를 패키지로 수입해 오자”는 말이 나올까. 때문에 정권이 임명했다는 태생적 한계는 인정하되, 평가만큼은 실적으로 해야 한다는 기류도 감지된다. 모처럼만에 거둔 호실적에도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선장과 선원들의 처지가 딱하다.

KT는 1278만명의 유선 가입자와 1560만명의 무선 가입자를 보유한 국내 최대 통신사다. 무한경쟁시대, 더 이상 정치가 경제논리를 누르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그래야만 KT가 정권의 ‘낙하산 놀이터’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민영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내년 3월 새 회장이 와 봐야 정권이 바뀌면 또 낙하산의 굴레가 씌워질테니까. 이번만큼은 경영실적과 무관하게 수장이 바뀌고, 전 회장의 각종 정책들이 부정되는 비생산적인 법칙도 끝나야 한다.

올, 내년이 그 원년으로 기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자업계의 전설 ‘황의 법칙’이 끝내 ‘KT의 법칙’을 꺾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무리일까? 시간은 불과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송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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