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 /AP 연합뉴스
김하성. /AP 연합뉴스

[한스경제=이정인 기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빅리그 2년 차 김하성(27·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 '천재일우(千載一遇)'가 왔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는 13일(이하 한국 시각)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간판 타타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23)가 금지 약물을 복용해 징계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홈페이지 MLB.com은 이날 "MLB 사무국이 샌디에이고 유격수 타티스 주니어에게 80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며 "그는 도핑 테스트에서 경기력 향상 물질인 클로스테볼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클로스테볼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합성 물질이다. 근육 발달에 도움을 주는 스테로이드계 성분이라 복용이 엄격하게 금지된다.

샌디에이고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제대로 찍혔다. 구단은 2021년 시즌을 시작하며 타티스 주니어와 14년 최대 3억4000만 달러(약 4400억 원)의 초대형 계약을 했다. 타티스 주니어는 지난해 내셔널리그 홈런 1위(42개)에 오르며 기대에 부응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오토바이 사고로 왼쪽 손목을 다쳐 이탈했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복귀를 준비했으나 금지 약물 복용이 적발돼 올 시즌 복귀가 불발됐다. 그는 "(피부 질환인) 백선증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한 약에서 클로스테볼 성분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복용한 약에 금지성분이 있는지 확인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잘못이다"라며 해명했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AP 연합뉴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AP 연합뉴스

시선은 싸늘하다. 현지 언론들은 타티스 주니어의 해명을 두고 '약물 복용 선수들의 전형적인 거짓말'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팀 동료 마이크 클레빈저(32·투수)도 “타티스로 인해 동료 선수들이 실망한 게 이번이 두 번째다. 좀 성숙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팬들 역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샌디에이고 구단에는 불행이지만, 김하성에겐 입지를 굳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다. 지난 시즌 전천후 백업으로 뛰었던 김하성은 올해 타티스 주니어의 공백을 메워 유격수 자리를 꿰찼다. 16일까지 10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7(361타수 89안타), 6홈런, 40타점, 42득점, 출루율 0.321, 장타율 0.371, OPS(출루율+장타율) 0.692를 기록 중이다. MLB 전체 유격수 가운데 장타율은 6위, OPS는 16위를 기록 중이다. 117경기에서 타율 0.202, 8홈런, 34타점, 출루율 0.270, 장타율 0.352에 그친 지난해와 비교해 모든 면에서 발전했다. 패스트볼 대처 능력이 좋아진 덕분이다. 그는 "(빠른 공 대처를 위해) 타격폼을 약간 수정했는데 그 덕분인 것 같다"며 "올해보다는 내년, 내년보다는 그 후년에 더 좋아질 것이다"고 자신했다.

수비력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이다. 김하성은 마이애미 말린스 미겔 로하스(0.985)에 이어 2번째로 높은 수비율을 기록 중이다. UZR(Ultimate Zone Rating·수비 기여도)는 5.4로 전체 1위다. 매 순간 전력 질주를 하고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를 펼쳐 팬들에게 박수를 받는다. CBS스포츠는 "김하성은 메이저리그 최고 수비수 중 한 명이라 할 수 있다. 타티스 주니어만큼 쳐야 샌디에이고에 가치를 제공하는 선수가 아니다"라며 "김하성은 넓은 수비 범위를 바탕으로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수비수로 성장했으며, 공격이 저조해도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타티스 주니어의 올 시즌 복귀가 무산되면서 김하성은 남은 시즌에도 샌디에이고 주전 유격수로 뛸 것으로 전망된다. '김하성의 시간'이 왔다.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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