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경기도 제공
용인반도체클러스터 조감도. /경기도 제공

[한스경제=김정연 기자]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기업 간 경쟁이 국가대항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 대만 등은 정부가 주도해 반도체 산업에 거액을 쏟아붓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이 올해 말 1.8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반도체 양산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당초 계획(연내 2나노 양산)을 앞당긴 것이다. 인텔이 1.8나노 칩 양산에 성공한다면 2025년 2나노 칩을 양산하려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의 계획보다 앞서게 된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한 행사장에서 “아시아에서 전 세계 반도체의 80%가 생산되는데 인텔이 이를 50%로 낮추겠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인텔이 이러한 자신감을 내비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화상 연설을 통해 “인텔은 미 반도체 산업의 챔피언”이라며 “미국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제2의 반도체법이든, 다른 방식이든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만과 한국에 넘어간 반도체 주도권을 미국이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는 2022년 제정된 ‘반도체 지원법’에 따라 자국에 반도체 제조시설을 투자한 기업에 총 280억달러(37조원)의 보조금을 나눠 지급한다. 확정된 3곳 중 2곳(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와 글로벌파운드리스)은 미국 기업이다. 이어 보조금을 지급받을 기업은 인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의 선두 지위 탈환을 노리고 있는 인텔에 100억달러(13조29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미국 인공지능(AI) 선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1.8나노 공정의 고객사로 등장했다. 현재 인텔의 파운드리 점유율은 1%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미국 기업끼리 밀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대만도 파운드리 시장 독주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이 제안한 ‘대만판 실리콘밸리’가 올해 착공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대만 행정원은 2027년까지 1000억대만달러(19조300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에서도 정부가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TSMC 제1공장 설비투자액의 절반에 가까운 최대 4760억엔(4조2000억원)을 제공했다. 2027년 말 가동을 목표로 한 제2공장에는 7300억엔(6조50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각국의 반도체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한국 정부의 대응 속도는 느리다. 올해 반도체 지원 예산은 1조3000억원이다. 아울러 반도체 기업의 시설 투자에 새액공제 혜택을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K-칩스법)은 올해 말 일몰 예정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도 속도전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 남부권에 622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목표 시기가 2047년이다. 이 클러스터에서 삼성전자의 1호 반도체 공장은 2030년에야 가동된다.

공장 건설도 쉽지 않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용지 선정을 마친지 5년째지만 토지 보상, 지역 민원 등의 이유로 5차례나 착공 시기가 밀렸다. 이르면 내년 착공 예정인데, 이는 계획보다 3년 가까이 늦춰진 셈이다.

김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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