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미국, '디커플링' 압박… "韓기업 노후장비 판매 중단 고무적”
중국, 한국의 최대 메모리 수출국에 시안·우시 등서 반도체 생산도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21일(현지 시각) 동맹국들과 함께 반도체 제조 장비뿐만 아니라 이미 중국에 수출한 장비에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의 판매도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21일(현지 시각) 동맹국들과 함께 반도체 제조 장비뿐만 아니라 이미 중국에 수출한 장비에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의 판매도 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정현 기자]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집중 견제하고 있는 미국이 한국 등 동맹의 반도체산업을 대상으로 장비부품과 서비스 분야까지 '탈중국'을 압박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K-반도체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총괄하는 앨런 에스테베스 미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21일(현지 시각) 반도체 제조 장비뿐만 아니라 장비에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의 통제수준이 자국과 동등해질 수 있도록 동맹국을 설득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이날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과 동맹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수준이 ‘동등한 상태(parity)’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전에 중국에 수출된 장비의 서비스 문제도 들여다보고 있다"며 "우리는 부품이 (중국으로) 가는 것을 막았으며, 동맹들도 동참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반도체 장비의 부품과 서비스를 제한해 중국이 이미 보유한 반도체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중국 반도체 산업과 관계를 단절하는 '디커플링'을 추진 중인 미국이 첨단 반도체 차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범용 반도체 생산장비에 대한 서비스와 부품까지 통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2022년 10월부터 자국 기업이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부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막아왔다. 이어 2023년 7~9월 일본과 네덜란드가 잇달아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발표했다.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램리서치·케이엘에이(KLA)와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의 에이에스엠엘(ASML) 등이 세계 반도체 장비산업의 주축이라 수출통제 이후 중국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당시 중국이 수출통제 발효 전인 6, 7월 두달간 수입한 반도체 장비는 50억달러 어치로 전년 동기의 29억달러에서 70%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출통제 이후에도 중국은 2023년 72억유로(10조4055억원)의 장비를 구입하며 ASML이 두 번째로 많은 장비를 판 나라가 됐다. 최신 노광장비인 EUV는 미국의 압력으로 살 수 없지만, 그 전 세대인 DUV 장비를 생산되는 대로 매집했다. 일본의 TEL에도 가장 큰 고객으로 남았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중에도 2022년 대비 판매가 6.9% 줄어드는 데 그쳤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미국·일본·네덜란드 3개국이 9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중국 입장에서는 세 나라 장비의 수입이 필수불가결하다.

이날 에스테베스 차관은 청문회서 일본과 네덜란드가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도입한 것을 말하며 "해야 할 일이 더 있다. 부품의 문제가 있으며 이것은 다른 국가들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겨냥한 언급도 있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다른 국가들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는 사례 중 하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022년부터 노후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중단했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했다. 그는 "핵심 한국 기업들이 중고 반도체 제조 장비를 더 이상 중국에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고 말하며 한국 기업의 수출규제를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은 미·중 양국의 움직임을 모두 주시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내 반도체 라인을 건설 중이거나 건설할 예정이다. 특히 미국 정부는 이달 말 삼성전자에 대한 60억달러(8조원) 규모의 반도체 지원법 보조금을 발표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노후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는 걸 저지하고 있으면서도, 21일 중국 최대 낸드플래시 행사인 '차이나 플래시 마켓 서밋(CFMS) 2024'에 참가해 다양한 메모리 혁신 기술을 선보였다. 메모리 시장 회복 상황에서 중국은 한국의 최대 메모리 수출국이며,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중국은 일본과 네덜란드에 이어 미국의 수출통제 입김이 한국을 겨냥하자 즉각적으로 반발했다. 허야둥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본토 칩 산업에 거액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기업들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을 택하게 강제한 것은 명백한 차별성을 띈다"며 "시장 규칙과 국제 경제·무역 규칙을 심각하게 위배했고, 앞으로 글로벌 반도체 산업망을 왜곡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2000년부터 핵심 반도체 기술 및 장비의 국산화를 추진 중이지만 아직 주요 반도체 장비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에 참여할 경우, K반도체 산업에도 파장이 미친다.중국이 한국산 반도체 수입의 큰 손인데다 상당량의 범용 반도체 생산도 중국에서 이뤄지는 만큼 국내 반도체기업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당장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장기적인 중국 리스크를 우려한다. 이번 규제가 집행되더라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 정부에서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중국 사업장 내 공정에는 당장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업체 엑시콘, 동진쎄미켐도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만 현지에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요 납품처라 에스테베스 차관이 발언한 '중국에 팔았거나 팔 예정'인 부품·장비 대목에는 걸리지 않는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사업 비중이 작지 않고, 향후 중국 사업장의 장비와 부품이 노후화 되어 석영, 세라믹, 램프 등의 소모성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장비 운영과 공정 유지에 어려움이 생긴다. 미국이 향후 수출통제 규제 범위를 계속해서 추가해 나갈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대중압박' 요구를 모른 척할 수 없지만 한국이 이에 동참하면 중국은 반도체 원자재 관련 수출 금지령을 내리는 등 어떠한 형태를 빌려서라도 보복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과 동맹의 모양새는 갖추되 국익을 철저히 따지는 줄타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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