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EU, 빅테크 독점여부 규제…위법 적발시 매출 10% 과징금
미 정부는 4대 빅테크 상대로 반독점 소송까지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왼쪽)과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이 25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디지털시장법(DMA)' 관련 첫 조사 착수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스경제=박정현 기자] 유럽연합(EU) 규제당국이 '빅테크 갑질'을 막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 시행 18일만에 구글, 애플, 메타를 겨냥했다. 지난 21일 미국 정부가 애플에까지 제소를 내며 4대 빅테크 기업(구글·애플·메타·아마존) 모두 미국 정부와 반독점 소송을 벌이게 됐는데, EU까지 가세하며 빅테크 기업의 분할 위기설까지 돌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5일(현지 시각) 구글·애플·메타 등 3개 기업이 DMA상 크게 5가지 조항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DMA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을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정상적인 경쟁을 가로막는 '게이트키퍼(문지기)'로 지정하고 사전규제를 적용하는 법안이다. 지난해 9월 EU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아마존·애플·바이트댄스·메타·마이크로소프트(MS)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하고 법 시행 전 6개월 동안 기업의 디지털 서비스를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DMA에 따라 6개사는 ▲자사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특혜 ▲자사 소프트웨어의 교차 판매 ▲IT 대기업의 개인 데이터 무단 사용 등이 금지된다.

EU 집행위는 구글과 애플이 각각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자사결제 시스템(인앱결제)을 유도하는 한편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외부결제(아웃링크결제) 홍보를 금지한 것을 규정 위반이라고 판단한다. 수수료가 없는 아웃링크결제와 달리 인앱결제는 수수료율이 거래액의 26~30%(통신사·PG사 수수료 포함)에 이른다. 애플은 아이폰·맥에서 사용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서만 유통할 수 있게 하며 거액의 수수료를 통행료처럼 받아왔는데, 이런 폐쇄적인 환경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상대로 ‘갑’이 될 수 있었다. 

또 애플은 아이폰 등의 운영체제인 iOS의 기본설정을 변경하거나, 디폴트(기본탑재) 소프트웨어를 쉽게 지울 수 있도록 허용했는지 조사받을 예정이다. 구글은 검색 엔진에서 구글쇼핑·항공·호텔 등 자사 서비스를 먼저 노출시킨 혐의가 있다.

메타의 경우 유럽에 '광고없는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구독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유료로 서비스를 받거나 사용자 정보를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동의하게 했다. EU는 메타가 소비자들에게 사실상 자신의 개인정보를 광고에 활용토록 동의하라고 강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6개 게이트키퍼 중 아마존·MS·바이트댄스는 이번 조사 대상에서 빠졌으나, EU는 아마존이 자사 온라인 장터에서 자체 브랜드를 입점업체 브랜드에 비해 더 유리하게 했는지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EU의 이날 DMA 규정 위반 정식조사 착수는 빅테크에 상당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반독점법 위반 조사의 경우 기업의 요청이나 추가 협의 필요성에 따라 시정조처의 연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DMA 조사는 12개월 안에 무조건 시정조처가 이뤄져야 한다. 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전세계 매출의 최대 10%의 과징금을 물어야 하고 심할 경우 최대 20%까지 상향조정 된다.

집행위는 이날 개시된 조사를 12개월 이내에 끝내겠다고 밝혔다. EU 고위 당국자는 "반독점법 조사보다 훨씬 더 신속히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 DMA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다만 EU가 EU 소속이 아닌 외국 기업만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했고, 바이트댄스(중국)를 제외하고는 전부 미국 기업임을 염두할 필요가 있다. DMA는 대형 플랫폼의 책임과 공정한 경쟁을 위해 EU가 내놓은 가장 강력한 빅테크 규제이지만 EU 내 플랫폼 시장을 삼킨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자국 기업 보호 법안'의 성격도 있다.

EU 뿐만 아니라 반독점 견제와 공정경쟁을 경제정책의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바이든 정부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빅테크 기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5년간의 조사를 통해 미 법무부는 아이폰을 중심으로 노트북·태블릿·스마트워치 등 자체 기기를 통해 구축해 온 '애플 생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경쟁사들의 서비스가 애플 기기와 통합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시장 경쟁을 저해시키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가격을 인상시켰다는 주장이다. 당시 메릭 갈랜드 법무장관은 “애플이 오늘날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기술·서비스면의) 우월성 때문이 아니라 불법적인 배타적 행위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 법무부가 애플의 견제를 확실시하면서 애플은 낭떠러지에 놓였다. 이미 애플은 미국 시가총액 1위에서 내려와 천천히 내리막길을 겪고 있다. 아이폰 판매 부진, AI혁신 둔화, 정부의 반독점 칼날에 이어 에픽게임즈, 메타, MS, X 등 미국의 주요 빅테크까지 줄줄이 애플 공격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일 EU 집행위원회는 애플이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18억4000만유로(약 2조7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서방 당국의 반독점 규제가 갈수록 날카로워지면서 대상 기업들이 분할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20세기 가장 강력한 독점 기업이었던 AT&T는 1984년 EU와 미국의 협공에 7개의 독립 회사로 분할됐다. 혹은 MS가 1998년 법무부와 4년간의 법적 분쟁을 펼친 것처럼 규제 당국과 몇 년간 지리한 소송을 이어갈 수도 있다. 유럽 지역에서는 기업 분할이 이뤄진 적이 없어, 이번 빅테크와 규제 당국의 소송전도 MS와 비슷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위원회 발표 이후 구글·애플·메타는 즉각 반발했다. 구글은 “DMA에 따라 유럽 서비스를 크게 바꿨다”고 밝혔다. 애플은 “DMA를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메타는 “DMA를 포함한 중복 규제 의무를 준수해 서비스를 설계했다”고 했다. 

박정현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