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보험인의 스승’으로 불리는 대산(大山)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가 오는 30일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올해는 교보생명이 100조 클럽에 입성하고 국내 보험사 중 유일하게 해외에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여러 의미를 지닌 해다.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보험계의 노벨상 격인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한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 창업자/사진=교보생명 제공

대산 신용호 선생은 일제 강점기 만주와 베이징에서 사업을 펼치며 국내 입성을 기다렸다. 해방 뒤 귀국한 대산은 한국전쟁 직후 보험사를 설립한다.

교보생명은 유독 ‘최초’의 기록이 많다. 교육보험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1958년)가 교보생명의 전신이다. 1977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 퇴직적립보험을, 1980년에는 암보험을 첫 개발해 보장성 보험을 알렸다.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1983년 세계보험협회(IIS)에서 보험계의 노벨상 격인 ‘세계보험대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IIS가 대산의 이름을 딴 학술대회를 제정했다.

어린 시절 폐렴을 앓았던 대산 신용호 선생은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했다. 이력서 학력란에 ‘배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배운다’를 써넣은 그는 교육보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생명보험과 교육을 접목해 매일 담배 한 갑 값을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300만명의 학생들이 보험금으로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었다.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 사옥/사진=교보생명 제공

학업의 한을 천일 동안 열흘에 한 권의 책, 100권을 읽는 ‘천일독서’로 푼 것이 교보문고의 시작이었다. 1981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대형 서점을 연다는 제안을 임직원 모두 반대했지만, 현재는 연간 5,000만명의 방문객이 교보문고를 찾는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사진=교보생명 제공

교보생명은 지난 6월 말 자산 100조3,04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에 이어 세 번째 ‘100조 클럽’ 입성이다.

부친인 대산의 가업을 이어 신창재 회장이 경영을 맡은 2000년에 비해 자산 규모가 4배로 뛰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관련 기업이 줄도산하면서 당시 교보생명의 자산은 26조원에 불과했다. 당기순이익은 2,283억원의 적자였다.

신 회장이 영업 조직을 전반적으로 손보고, 고객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퀄리티 경영’을 주문하면서 효과를 봤다. 이듬해 1,400억 흑자전환한 뒤 현재 연 5,000~6,000억 수준의 순익을 유지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국내 보험회사로는 유일하게 해외 신용평가사로부터 평가등급을 받았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교보생명에 2015년부터 올해까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와 같은 등급인‘A1’을 부여했다.

해외 평가등급을 갖춰 국내 보험사로서는 유일하게 해외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가능하다. 지난 7월 교보생명은 해외에서 5억 달러(한화 약 5,67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발행에 성공했다. 교보생명은 2021년 도입될 새 국제회계기준 IFRS17에 맞춰 지급여력(RBC)비율과 리스크 관리, 해외자산 유입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허인혜 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