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신학기 시즌을 맞아 은행들이 바빠졌다. 새로 은행과의 거래를 시작하는 대학생들을 잡기 위함이다. 새내기들도 사회초년생으로서 신용사회의 첫 발을 내딛으며 금융을 일상화하는 첫 걸음을 해야 한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와 함께 국민·신한·우리·KEB하나·농협·기업은행 등 국내 주요 6개 은행을 돌아봤다. [새내기의 좌충우돌 은행 방문기①]"대학생이세요? 청약통장 가입하기 딱 좋은 나이네요”, [새내기의 좌충우돌 은행 방문기②] 고객님은 씬 파일러, 통장만들기 이유 뭔가요?, 각 은행별 모바일 뱅킹을 비교하는 3편으로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 김서연] #. 올해 대학교 새내기가 된 18학번 김주연(18·여)씨. 모든 은행에서 입출금통장을 하나씩 만들어두려고 은행을 방문한 김씨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생활비, 여행자금 등 목적 통장으로 쓰기 위해 각 은행마다 계좌를 만들려고 했으나 번번이 거절을 당한 것이다. 이제 막 금융거래를 시작해 신용등급도 낮을 리가 없는 새내기가 새로 계좌를 개설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진=연합뉴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포통장으로 쓰일 위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씨와 같은 대학생, 사회초년생, 주부 등 금융거래 정보가 거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씬 파일러’(thin filer)가 은행에서 첫 계좌를 만들려면 계좌를 개설하려는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특히 대학생의 경우 소속 대학교와 주거래 계약을 맺은 은행이 있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계좌개설 목적이 필요하다. 주거래은행에서 입학과 동시에 학생증 겸 체크카드와 입출금통장을 만들어 주고 있어서 타행에서 새로 계좌를 트려면 한층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약 3년 전부터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해 계좌개설이 까다로워졌는데, 지난해 말부터 불어닥친 가상화폐 광풍으로 이 문턱이 더 높아졌다. 가상화폐 거래를 위한 계좌개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에 편승해 대포통장을 개설하거나 자금세탁 혐의거래를 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은행들이 통장 개설에 더욱 조심스러워진 탓이다.

김씨와 방문한 5개 은행의 6개 지점 중 “입출금통장을 만들려고 한다”는 김씨의 말에 통장을 만들어 준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먼저 김씨의 대학교 인근 우리은행 지점을 방문했다. 입출금통장 개설을 요구하자 직원은 김씨의 소속 대학교를 먼저 물었다. 그는 “학생 분의 소속 대학교 주거래은행은 KEB하나은행인데 우리은행 계좌가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입출금통장의 경우 1인당 하나 정도면 되고, 특히 대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거래하는 은행이 생기기 때문에 (입출금통장을) 만들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직원은 한쪽 벽면에 크게 붙어있는 ‘대포통장 주의’ 현수막을 가리키며 “대포통장이 워낙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통장을 못 만든다”고 답했다.

“은행별로 계좌를 만들어 생활비, 공과금, 여행자금 등 목적 통장 등으로 쓰려고 한다”고 거래 목적을 밝혔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지참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요즘은 모든 고객이 입출금통장을 만들려면 금융거래목적이 확인돼야 해요. 고객님(김씨)의 경우 생활비 통장으로 쓰실거면 적금 이체, 공과금, 통신료 등을 자동이체를 걸어놓든지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고지서를 가져오셔야 만드실 수 있어요.”

다른 우리은행 지점도 방문했다. 여기서 역시 계좌개설을 거절당했는데, 이유는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지점의 행원은 “공과금 납부 등 생활비 목적으로 통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지가 서울이어야 한다”며 “거주지나 직장이 개설지점과 먼 원격지 고객의 경우 대포통장 계좌 개설의 가능성이 있어 개설이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인근 신한은행 지점의 직원도 입출금통장 개설 요구를 거절했다. 직원은 “자유적금이나 적금 통장을 (신규)하면 상관이 없는데 입출금통장은 대포통장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급여통장, 생활비 통장 등 계좌개설 이유가 적힌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내밀었다.

인근 기업은행 지점 직원은 “대학생의 경우 입출금 한도가 없는 입출금통장 개설은 사실상 전 은행에서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김씨와 같은 대학생은 아예 입출금통장 개설이 불가할까. 아니다. 개설은 할 수 있으나 이체와 출금에 있어 한도가 주어진다.

한도가 주어지는 입출금통장을 ‘한도제한계좌’라고 한다. 출금·이체 한도가 100만원으로 제한된 계좌다. 대포통장 방지를 위해 최근 20영업일 내 다른 금융사에서 계좌를 개설한 기록이 있을 경우 신규 계좌 개설이 제한된다.

우리은행과 기업은행 지점의 직원들은 기본 입출금통장 대신 한도제한계좌를 권했다. 아파트 관리비 자동이체등록 목적이나 아르바이트를 통한 급여 입금 목적이라면 한도제한계좌에 가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포통장 의심 사유가 이전보다 더 많아져서 요즘 (통장 개설 요건이) 엄격한 것이 사실”이라며 “대포통장이 많이 줄긴 했어도 대포통장 문제가 발생하면 금융당국에 대포통장 발생을 막는 방안을 제출해야 하는 등 제재가 심해져서 몸을 사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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