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금융 제도권 ‘사각지대’ 놓인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이어지는데도 손 놓은 정부...피해 키운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두 곳이 일주일 새 연달아 해킹 피해를 겪고 있으나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 제도권 대책의 부재 속에서 투자자 피해 규모만 커지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사진=flickr

[한스경제 허지은] 일주일 새 두 곳이 털렸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얘기다. 가상화폐를 향한 해커들의 검은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융 당국은 마땅한 정책마저 내놓지 않고 있어 정부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더 큰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빗썸은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새벽 사이 약 350억원 규모의 일부 가상화폐가 탈취당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당분간 거래서비스 외 모든 입출금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해킹당한 코인은 빗썸이 보유하고 있던 리플 등 일부 가상화폐로, 고객 보유분은 모두 콜드월렛에 보관하고 있던 터라 고객 피해는 면한 것으로 전해진다.

빗썸 관계자는 “최근 해킹 시도가 늘고 있어 보안 차원에서 고객 보유 코인을 콜드월렛에 모두 이관하는 작업을 마쳤다. 지난 주말에도 해킹 시도가 감지돼 서비스를 중단한 적이 있다”면서 “해킹 시도 자체가 예전보다 늘어 보안에 신경쓰고 있던 차에 회사 보유분 일부가 해킹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가상화폐 거래소를 노리는 해킹 시도가 늘어났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로 들어오는 해킹 공격들이 기존 금융권 해킹 방법에 비해 새로운 형태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거래소들도 보안 수준을 높이고 있지만 대응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킹 시도의 증가는 실제 해킹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앞서 지난 11일에는 국내 7위권 거래소 코인레일이 수백억원 대 해킹 피해를 입었다. 피해 추정 규모는 400억원대다. 일주일 새 빗썸과 코인레일에서 750억원어치의 가상화폐가 도난당했다. 추세가 심상치않다.

해킹 피해규모도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2016년 야피존(약 50억원), 지난해 유빗(약 172억원)의 피해규모를 감안하면 올해 들어 해킹 피해 액수는 수백억원대로 올라섰다. 해외에서도 2014년 마운트곡스, 2017년 코인체크 등 대형 거래소들도 해킹과의 전쟁에서 줄줄이 패배를 선언했다.

'큰 돈 저수지'인데...금융보안원도 '나 몰라라'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다.특히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 제도권 안에 놓여있지 못한 상태에서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번 빗썸 해킹에도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금융감독원이나 금융보안원이 아닌 인터넷진흥원(KISA)이다.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는 금융권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상화폐 거래소의 보안 실태를 점검한 곳도 금융당국이 아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였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금융 제도권 밖에 놓인 만큼 기존 금융권 회사들이 누리는 보안 체계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다. 금융부문 통합관제를 운영하는 금융보안원은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 중 어떤 곳도 회원으로 두지 않고 있다.

금융보안원 관계자는 “거래소는 금융권으로 분류가 되지 않기 때문에 회원으로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만약 금융권으로 편입이 된다면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리 감독을 받고 금보원 회원으로도 가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범정부 태스크포스도 침묵일관…투자자 피해 키워

지난해 말 범정부 차원에서 마련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말 국무조정실 주재로 기획재정부, 금융위우너회, 법무부, 과기정통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범정부 차원에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가상화폐 관련 정책과 입법 마련 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투자자들은 정부의 안일한 대책 마련이 해킹 피해를 늘린다고 토로한다. 가상화폐 거래소가 사실상 사각지대 안에서 해킹의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는데도 아직 제도권 편입 여부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어서다.

빗썸 해킹 소식이 알려진 직후 가상화폐 투자 커뮤니티에서는 “내 돈이 오고가는데도 금융권 제도 안에 놓여있지 않다는게 말이 되느냐”, “해킹 피해자만 있지 범인을 잡았다는 뉴스는 아직도 못 봤다. 왜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특히 빗썸의 경우 최근 광고를 통해 높은 보안을 강조해온 터라 투자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한 가상화폐 투자자는 “요즘 동영상 광고 보면 ‘당신의 자산을 지켜준다’고 하더니 믿을 수가 없다. 빗썸처럼 대형 거래소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올해 들어 가상화폐 시장이 반등의 기미가 보이면 여러 악재가 연이어 터지면서 또 다시 침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투기나 자금세탁, 가격 조작 등 여러 의혹이 계속되고 있는데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서 보다 투명한 시장 만들기에 앞장서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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