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증권가. /사진=연합뉴스

[한스경제=김솔이 기자] 여의도 증권업계에 큰 ‘여풍(女風)’이 불었다. 박정림 KB증권 부사장이 증권업계 처음으로 여성 CEO가 됐다. 다만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여성 임원의 비중이 낮은 증권업계의 현실에서 견고한 ‘유리천장’이 더 깨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증권업계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중 현저히 적어

박정림 KB증권 부사장. /사진=KB금융지주

올 연말 증권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사는 단연 박 부사장이다. KB증권은 지난 21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박정림 부사장과 김성현 투자금융(IB)총괄 부사장을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박 부사장은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CEO가 됐다.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2년이다.

박 부사장의 승진 이후 단단한 증권업계에 ‘유리천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박 부사장을 비롯해 증권사의 여성 임원 발탁이 특별한 사례로 소개될 만큼 아직까지 증권업계에서 여성 임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자기자본 10위 이내 증권사 중 8곳이 상무급 이상 여성 임원을 두고 있었다. 한국투자증권과 키움증권에는 여성 임원이 아예 없었다.

여성 임원을 둔 8곳 중 6개 증권사에는 여성 임원이 한 명뿐이었다. NH투자증권은 이번달 인사에서 유현숙 WM지원본부장(상무)이 승진해 유일한 여성 임원이 됐다. KB증권의 경우 박 부사장이 KB금융지주 자산관리(WM)총괄 부사장, KB국민은행 부행장을 겸임해왔다. 또 신한금융투자에는 현주미 디지털사업본부장, 메리츠종금증권에는 이명희 강남금융센터 리테일 전무, 하나금융투자에는 진미경 WM센터장(상무), 대신증권에는 이순남 강남선릉센터장(상무) 등이 여성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성 임원이 가장 많은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다. 현재 남미옥 강서지역본부장(상무), 박숙경 호남충청지역 본부장(상무) 등 8명의 여성 임원이 미래에셋대우에 재직 중이다. 다음으로 삼성증권은 이재경 삼성타운금융센터장(전무)과 박경희 SNI본부장(상무) 등 두 명이 여성 임원으로 있다.

◆ 결혼·육아로 경력단절…증권업계에선 치명적

증권업계뿐 아니라 대부분의 여성 근로자는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겪는다. 그중에서도 시황에 따라 움직이는 증권업계의 특성상 경력단절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공백 기간 동안 업계의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지 못해 뒤처지는 셈이다. 업무 복귀 후 증권업계의 최근 경향을 따라잡는 과정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과거보다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나 여성 직원들이 결혼·출산·육아 과정을 거치면서 퇴사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현재로선 임원 승진 대상에 오르는 여성 직원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뿐 아니라 금융투자업계는 전통적으로 남성중심의 조직 문화가 강한 곳으로 꼽힌다. 또 업무 강도가 매우 높거나 불규칙한 출퇴근 시간, 잦은 야근 등을 감수해야 하는 업무가 많다. 이로 인해 그간 여성 직원들의 이탈이 잦았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특히 다른 업계보다 성과주의 원칙이 자리 잡은 증권업계에선 개인의 능력이 승진의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리테일, IB 등 주요 사업부의 영업 최전선에 뛰어드는 여성 직원들이 많지 않았던 만큼 이들이 임원에 오를 기회가 적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증권사의 영업 업무는 기본적으로 위험(리스크)을 감수해야 하는 특성이 있어 여성 직원들보다 남성 직원들의 비중이 높았다”며 “또 회사 입장에서도 법인·기관 등을 상대로 하는 업무가 많다 보니 남성 직원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들어 증권업계 전반적으로 부서장급 이상의 여성 관리자가 늘어나면서 여성 임원의 비중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들이 고위급 임원 승진 대상에 오르는 시점이면 ‘제2의 박정림’의 탄생 가능성도 아예 없진 않다는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지난 몇 년 간 여성 관리자를 적극적으로 발탁하는 추세인 데다 신규 입사자 중 여성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는 여성 임원의 수가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김솔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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