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서울역 KTX 이용객, 작년 대비 76.5% 감소
명동, 임대료 인하 배려 없어
종로, 상가 건너 상가마다 임대문의
서울 전통 상권들이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명동, 서울역, 동대문. /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한스경제=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서울의 전통적인 상권들이 위협받고 있다. 주 52시간 시행으로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강조되면서 회식과 술자리 대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생활로 바뀌고 있다. 이는 내수침체로 이어졌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잠시 멈춤' 캠페인이 펼치지면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상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한스경제는 최근 서울 중심에 위치한 전통 상권을 집중 취재했다. 서울역부터 광화문, 명동, 충무로, 종각, 종로, 동대문 등에 자리잡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직접 만났다.

직장인으로 붐볐던 광화문(오른쪽) 골목길과 서울역의 모습. /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광화문 "이런 불황은 가게를 연 이후 처음"

광화문은 서울 핵심 상권 중 하나다. 주변에 은행 등 금융사들이 밀집해 있고, 다수의 언론사와 KT 등 통신사가 위치해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평소 점심이나 저녁 시간이면 일대 직장인 손님들로 붐비는 거리도 최근들어 한산한 상황이다.

광화문에서 15년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이런 불황은 가게를 연 이후 처음"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출도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A씨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이렇게까지 타격을 입지 않았다"며 "지금은 손님이 하루에 10명 방문할까 말까다. 원래는 토요일에도 가게 문을 열었지만 2월부터는 평일에만 장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달이 임대차 재계약인데 연장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장사할 계획이다. 여기(광화문)는 임대료가 350만원 정도인데 이런 불황에는 도저히 감당이 안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인근의 편의점도 손님들이 뚝 떨어져 나갔다. 이곳 경영주 B씨는 편의점 내에서 라면이나 김밥을 먹는 광경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B씨는 "가끔가다 마스크나 손 세정제가 있냐고 물어오는 손님이 대다수"라며 "없다고 하면 그냥 나가버리기 일쑤다. 손님이 너무 없어보니 종업원들 근무 시간도 최소 1시간씩 줄였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철도 이용객이 줄면서 서울역 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지난 7일과 8일 기준 고속철도(KTX) 승차 인원은 각각 3만5876명, 4만3226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3월9일과 10일 승차 인원은 19만108명, 18만3756명으로 각각 81.1%, 76.5% 감소한 수치다. 지난 2004년 3월30일 KTX가 개통 이후 가장 낮은 수송 실적을 기록했다.

오후 늦게 방문한 서울역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항상 자리가 부족했던 대기의자는 텅텅 비었고 이용객들은 몇 칸씩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있었다.

역내에서 호두과자 매장을 운영 중인 C씨는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C씨는 "원래 하루에 100박스를 판매했다면 지금은 20박스 정도 판매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밤 늦은 11시까지 문을 열어둘 만큼 장사가 잘됐지만, 이제는 손님이 급감하면서 오후 9~10시에 문을 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역 바깥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근 분식집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면서 몇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하루에 라면 한박스를 팔았지만 이젠 한박스로 나흘을 팔아요."

분식점 사장 D씨는 "지난달부터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너무 미안하지만 장사가 안되다 보니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착한 임대료' 운동은 남의 얘기라고도 했다. "당연히 건물주한테 물어봤다"며 "서너번 물어봤지만 근데 들은 체도 안했다"고 털어놨다.

매출이 줄면서 인근에는 장기간의 임시 휴업에 들어간 곳도 있었다. 거리엔 '쉽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은 채 불이 꺼진 가게들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명동에서는 '임시휴업'하는 상가들이 많았다. /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외국인 관광객 붐비던 명동, 코로나19로 '전멸' 수준

외국인으로 북적이던 명동은 타격이 더 컸다. 중국과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임시 휴업이나 폐업을 선택하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었다.

평일에도 어김없이 북적거렸던 관광객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인들은 손님이 '전멸' 수준이라고 했다. 매일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 물건을 구매했던 올리브영 명동중앙점에도 매장을 찾은 손님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

명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E씨는 "우리 가게의 매출은 작년 이맘때보다 60% 이상 감소했다"며 "매출이 나오질 않으니 공장에서도 옷을 생산을 멈춘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곳(명동) 일대의 땅값이 워낙 비싸다보니 임대료 인하 등의 배려는 없다"며 "인건비라도 아껴보기 위해 직원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거나 가게 문을 닫는 점포도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F씨도 "얼마 전부터 옆 가게는 손님이 없어 일주일에 두세 번만 문을 열고 있다"며 "그마저도 일찍 영업을 종료하는 것으로 안다. 지금 문을 닫은 것도 일찍 장사를 끝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을지로골뱅이골목과 충무로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오후 6시 직장인들이 업무를 마치고 모여들기 시작할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 일대 상인들의 가장 큰 고민도 매출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 고용도 줄이기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비싸기로 유명한 임대료는 여전히 걱정거리다. 음식점 사장 G씨는 "여기저기서 착한임대료 운동을 벌인다고 하지만 미담은 미담일 뿐"이라며 "임대료 지원 등도 프렌차이즈 점포들이나 가능한 얘기여서 우리 같은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은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마스크를 건네는 등 코로나19로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도 배려의 미덕을 보여줬다.

앞서 인터뷰에 응했던 E씨는 "혹시 몰라 여분의 마스크를 보관 중이었다"며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챙겨야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라고 격려했다.

일본 불매운동을 버티지 못한 종로3가 유니클로(왼쪽)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 종로 금은방(오른쪽 맨 위)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종로 금은방, 코로나19로 사람도 없는데 금값 올라 '울상'

종각역부터 동대문역까지 종로 일대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늘어선 상가들 군데 군데 이가 빠진 것처럼 '임대문의'가 붙어 있었다. 지난해 일본 불매운동에 버티지 못한 종로3가 유니클로 매장은 아직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특히 종로 금은방에는 손님이 없었다. 종로에서 유명한 한 금은방 사장 H씨는 "우리가 반토막이 났으면 다른 곳은 아마 더 힘들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착한 임대료'요? 금은방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 생각해서인지 그런거 전혀 없죠. 최근에는 금값이 무척 뛰었잖아요. 금값이 오르면 금을 사는 사람도 줄어들거든요.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결혼 날짜도 미루는 판이라 예물보러 오는 사람도 하루에 한 손에 꼽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H씨 매장 옆 금은방은 이미 사업을 접고 종로를 떠난 상태였다.

광장시장 등 전통시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 시장의 특성상 오픈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돌아다니며 물건도 사고 음식도 사먹다보니 감염에 대한 공포가 더 심했다.

광장시장에서 일하는 I씨는 "예년에 비해 손님이 3분의 1도 오지 않는다. 저녁이면 파전에, 족발에, 순대에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세집 중 두집은 오지 않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동대문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쇼핑센터 밀리오레에는 손님이 없었다. 한 층에 손님이 한 둘, 일하는 직원들이 훨씬 많았다. 2000년대 초반 패션 메카로 불렸던 곳이 맞나 싶었다.

잘나갈 때는 점포당 매매가격이 3억~4억원이었다면 지금은 약 7000만원 수준에 월 임대료는 5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도 한산했다. 고급 잡화 매장들이 위치한 1층은 조용했다. 지하에 위치한 유명 브랜드 빵집은 세일 판매를 하고 있었다.

빵집 사장 J씨는 "이곳에 입점하고 처음으로 낮시간에 할인 판매를 하고 있다. 그날 만든 빵은 팔지 못하면 폐기 처분하기 때문에 마감 전 세일은 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세일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건물 자체에 손님이 없다. 영화관도 있지만 관객이 줄어 정말 말도 못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힘든 시기이지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지원들이 나오고 있어 희망적인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13일 서울신용보증재단을 방문, 소상공인 금융지원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중기부는 그동안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가 담당했던 소상공인 대출 보증 신청·접수 업무를 민간은행으로 확대 위탁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전국 16개 지역신보가 가운데 위탁보증 업무를 하지 않던 광주, 전북, 제주, 경기 지역신보도 이를 시행하고 신한은행, 국민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SC제일은행 등 5개 민간은행도 지역신보로부터 보증 업무를 위탁받아 진행한다.

절차 간소화와 관련해서는 전체의 66.5%에 달하는 3000만원 이하 소액보증의 경우 보증심사 기준일 당시 연체대출금만 없으면 보증을 공급하는 등 최소요건만 심사한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도 5일 이내 대출 가능한 직접 대출 비중을 현 25%에서 30%로 확대하고, 자체 간이심사 방식으로 대출 속도를 높일 계획이다. 지역센터 방문 없이 온라인으로 정책자금을 신청하고 확인서를 발급할 수 있는 시스템도 운영된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자금 신청이 몰려 병목 현상이 심하다. 정책자금을 기다리는 소상공인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소상공인들이 재단 방문 없이 은행에서 원스톱 보증·대출할 수 있게 하는 등 접수 편의를 제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권혁기, 황보준엽, 김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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