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한스경제/ 이우종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기업활동에는 자원이 필요하다. 자원은 시장에서 조달한다. 투자자들은 자본시장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소비자와 공급자들은 제품, 상품, 서비스 시장에서 공급망을 통해 기업에 자원을 제공한다. 기업은 위탁자의 자원들을 수탁하여 업(業)을 영위한다. 이 업이 지속할 수 있으려면 기업이 혁신을 통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통해 위탁자가 요구하는 반대급부를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 자원의 공급자들과 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 비로소 업이 바로 선다. 

기업들은 종종 위탁자들을 작위(作爲)로 기망(欺罔)한다. 수탁한 자원을 횡령하거나, 위탁자의 재산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을 저지른다. 그런데 이런 작위적인 기망은 사후적으로나마 인지할 수 있다.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기망은 인지하기조차 어렵다. 부작위에 의한 기망이란 수탁한 자원들로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의무를 성실하게 다하지 않는 경우인데, 적극적으로 횡령하거나 배임하는 경우는 아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작위에 의한 기망은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기업활동에 대해서는 작위와 부작위 행위가 종합적으로 평가받는다. 시장이 기대하는 재무실적을 하회하면 벌을 받고, 상회하면 상을 받는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해야 할 일을 잘 해내는 것도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나 유독 ESG 활동에서는 작위적 기망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 말아야 할 일(negative ESG)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받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positive ESG)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ESG 평가에서 부작위의 관점이 흐린 이유는, 환경과 사회가 제공하는 자원들이 세대에 걸친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공공재를 파괴하면 현재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폐가 되지만, 공공재를 보존하는 것은 미래세대에만 중요하다. 그래서 자연자원을 파괴적으로 사용하면 즉각적으로 비난받지만, 자연자원을 잘 보존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 즉각적으로 보상받지는 않는다. ESG 등급을 투자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는 투자자들마저도, ESG 등급을 스크리닝 목적(‘negative ESG는 없는가’)으로 제한하여 사용한다. 관련 규제 또한 페널티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ESG 친화적인 지배구조라면 작위뿐만 아니라 부작위 행위에 대해서도 수탁자의 책임을 논의해야 한다.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작위와 부작위를 포괄하여 광의의 수탁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국제지속가능성 공시기준에서 ESG 관련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논의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런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운전을 ‘잘’하고 싶은 면허시험 응시자는 필기시험의 커트라인 점수가 60점인데도 100점을 맞을 수 있도록 도로교통 법규를 충실히 익힐 것이다. 하지만 면허취득에만 관심이 있는 응시자에게는 60점 이상 모두 합격인 시험에서 100점을 맞는 것은 비효율이고 비합리이다. 우리 도로에 어떤 운전자가 더 많아야 할 것인가. 

 

이우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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