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 
                                정철의 국립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교수 

[한스경제/ 정철의 국립안동대 교수] 지난주 반짝 추웠다가 요즘은 다시 따뜻한 날씨가 이어진다. 12월 중순인 데도 반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운동하는 이들도 보인다. 어떤 이들에게는 춥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최근 기후변화는 몇 가지 뚜렷한 패턴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가 기후 온난화의 추세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표면의 평균 온도는 지난 100년간 0.6°C가 높아졌고, 이로 인한 각종 생물 분포지역의 이동은 물론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등 변화를 목도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의 경향은 우리나라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지표면 평균 온도 상승 폭은 1.8°C가 넘는다. 전 세계 평균 상승 폭의 3배 이상이다. 그래서 한반도를 기후변화의 핫스폿이라고 한다. 봄은 빨리 오고 여름은 길어지며 겨울은 늦게 찾아오지만, 그 겨울은 따뜻해지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한반도의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이상 기상현상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 기상은 평균적인 기상값보다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기온, 강수, 바람, 서리, 우박 등의 기상현상을 말한다. 이상 기상현상의 빈번한 발생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과 비용의 증가를 동반하는데, 이상 기상현상은 불확실성이 높기에 대비하기도 어렵고 재난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아진다. 그리고 2022년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변동성이 큰 연도였다고 기상청은 보고했다. 

이상 기상현상의 시기적 변동뿐 아니라 지역적 변동 폭도 더 커지고 있다. 한 도시에서는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웃 도시에는 해가 쨍쨍하다. 한쪽에서는 눈이 내리고 한쪽은 따스하다. 극단적 고온과 저온 외에도 기상현상은 홍수, 태풍, 우박 등 자연재해로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여름, 우리는 기록적인 장마와 침수 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야생의 생물과 생태계에 대한 영향일지 모른다. 온난화로 인해 예전에는 한반도에 서식하지 못했던 아열대성 곤충의 침입과 그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꽃매미, 미국선녀벌레, 갈색날개매미충 등의 외래해충의 침입과 번성, 러브버그라고 하는 우단털파리, 대벌레, 매미나방 등 초식성 곤충의 대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

외래생물의 침입으로 생태계 먹이망이 교란되고 짜임새가 재정비되는 과정에 새로운 피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 예로 2003년에 중국 남부지역에서 부산항을 통해 우리나라로 침입한 등검은말벌이 있다. 아열대성 식자인 등검은말벌은 우리나라에 정착하며 급속도로 국내 토착 말벌류와 세력 다툼을 시작하였다. 이 세력다툼으로 인하여 우리나라 말벌 집단의 구조에 변화가 생겼으며, 그 과정에서 등검은말벌과 생태적 지위가 비슷한 털보말벌이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털보말벌은 개체수가 급감하였으며, 등검은말벌은 전체 말벌 집단의 개체수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 우점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러한 세력 교체는 토착 생태계뿐만 아니라 양봉 산업에도 큰 피해를 주고 있다. 

꿀벌 전문포식자로 알려진 등검은말벌은 가을철에 양봉장에 집중적으로 출몰한다. 많게는 하루에 2천여 마리가 출몰하여 한 마리가 대여섯 마리의 꿀벌을 사냥하니, 하루에 꿀벌 2~3만 마리가 사라지는 것은 금방이다. 이러한 양봉장 공격은 한두 달가량 지속되는데 그 양봉장에서는 벌통 2~30개가 사라지는 셈이니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더군다나 가을철 피해는 꿀벌의 겨울나기에 치명적 영향을 끼쳐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대부분 곤충은 추운 겨울이 오면 휴면이라는 특별한 생리기작을 통해 월동처에서 겨울잠을 자며 겨울을 보낸다. 그런데 꿀벌은 다른 곤충들과 달리 겨울잠을 자지 않는다. 대신 2~3만 마리의 일벌들이 여왕벌을 둘러싸고 벌통 안에서 그간 모아둔 꿀을 먹으며 서로 어깨동무하고 똘똘 뭉쳐서 가슴근육을 움직여 열을 내 겨울을 견딘다. 추운 겨울, 충분한 열을 내기 위해서는 일벌 한 마리 한 마리가 매우 중요한데, 가을철에 이들이 말벌에게 대량으로 잡아먹히면 겨울나기 하는 꿀벌의 세력이 약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환경이 급변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기온 하강으로 벌통 내 온도가 유지되지 않아 벌들이 얼어 죽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온 상승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꿀벌 집단에서는 이른 봄이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겨울나기 중이던 여왕벌이 산란을 시작한다. 일벌들은 애벌레들을 키우기 위하여 애벌레의 먹이 생산과 육아활동을 시작하고 일부의 일벌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벌통 밖으로 나간다. 그러나 겨울에는 해가 짧아 기온이 금세 떨어지기 때문에 밖에서 활동하던 꿀벌들은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얼어 죽게 된다. 이런 과정으로 인해 전체적인 꿀벌 개체수가 감소하거나 폐사하게 된다. 꿀벌의 죽음은 단순히 양봉업계의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꿀벌들이 생태계에서 수행하는 화분매개라는 생태계 서비스에도 영향을 준다. 사과, 배, 복숭아, 자두는 물론 딸기, 토마토 등 많은 농작물이 곤충의 화분매개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산야를 구성하는 야생의 식물들도 역시 꽃을 피워서 종자와 열매를 만들어내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화분매개가 필요하다. 꿀벌은 농업과 생태계 유지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두 차례나 겨울철 꿀벌의 대규모 죽음을 지켜보았다. 꿀벌의 죽음은 많은 야생벌과 자연의 다른 곤충들의 처지를 대변한다고 본다. 꿀벌의 죽음을 통해서 야생벌들도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감지하는 것이다. 야생벌들의 생존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많지 않지만, 가위벌류나 호박벌 등의 야생벌의 밀도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최근 인간 활동의 원인으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생물다양성의 절멸'을 제6기인류세대멸종의 시기라고도 칭한다. 우리가 그동안 이룩해 놓은 찬란한 문명과 문화, 그 유산들이 역설적으로 우리와 야생의 생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봄이 빨리 오면 식물들은 또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꿀벌은 죽고 야생벌과 나비들의 발생은 꽃피는 시기와 맞지 않는다. 벌과 나비는 배가 고파지고, 꽃은 시들고 과일과 종자도 맺히지 않는다. 새들이 배불리 먹고 번식하기 위한 각종 씨앗과 과일들은 보이지 않고 온통 파란 풀과 나뭇잎만 무성하다. 새들이 없는 공간에서 잎을 갉아 먹는 곤충들이 대번성한다. 더 이상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무에 잎사귀가 하나씩 없어지면서 해충이 창궐하고 풀과 나무는 하나씩 죽어간다. 1962년 레이첼카슨은 [침묵의 봄]이란 책에서 화학농약에 의한 생태계의 위험을 경고했다. 2023년 우리는 꿀벌의 죽음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침묵의 봄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듣게 된다. 

꿀벌을 살려야 한다. 벌들에게 먹이가 되고 서식지가 될 다양한 먹이식물들이 요구된다. 산림 관리 측면에서도 꽃 피는 식물을 확대 식재하여 철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어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조금 더 시야를 널리 본다면,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기후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저탄소와 지속가능 개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기후 행동을 준비하고 실천할 때이다. 경제 개발과 정책 입안도 탄소중립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꽃이 피고 꿀벌이 앵앵거리는 봄날을 기대해 본다.

 

정철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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