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스경제/ 이찬규 중앙대 교수]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생각하지 마’라는 말과 상관 없이 머리 속에 ‘코끼리’를 떠올리게 된다는 프레임 이론을 체계화 했다. 코끼리는 미국의 공화당을 상징하는데 공화당이 만든 여러 프레임으로 진보 세력이 맥 없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적시했다. 그래서 진보 세력들도 의미있는 프레임을 만들어 내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지언어학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세상의 모든 개별적인 사실을 다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추상화시켜 규칙과 틀을 만든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고양이’가 있지만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그것을 인식하기 어려우니 한데 묶어 ‘고양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이러한 언어의 힘으로 인해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머릿속에 더 단단한 틀과 규칙을 갖게 된다. 그 원리를 이용하여 프레임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금 인상’을 ‘세금 정상화’라고 반복해서 말하면, 일정한 틀이 만들어 지고, 대중들은 ‘이제 세금이 정상화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프레임이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뒤부터 이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분야는 단연 정치권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정치 양대 진영에서 ‘진보는 친북, 불법, 억지’, ‘보수는 부패, 꼴통, 친일’로 프레임을 만들어 퍼뜨리고, 지지자들은 여과 없이 이 프레임을 활용하여 상대방을 공격한다. 

정치 프레임은 그 효과와 별도로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예를 들어 ‘보수는 원자력 에너지’, ‘진보는 재생 에너지’라는 프레임을 만들면, 누군가가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보수주의자가 되고,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각종 프레임에 갇혀 버리고 만다. 보수주의자라고 해도 원자력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고, 원자력을 찬성한다고 해서 보수주의자가 아닐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다.

프레임 구축은 언어의 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프레임 이론 등장 이전에도 사람들은 언어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방을 낙인찍는 행위를 해왔다. 누군가를 ‘수다쟁이’라고 낙인 찍으면 그 사람이 어떤 진실된 말을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게 되고, ‘바람둥이’라고 소문 내면 여자들은 접근조차를 꺼린다. ‘화냥년(還鄕女)’는 얼마나 끔찍한 말인가? 오랑캐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 왔더니 ‘창녀’ 취급을 하며 붙인 말이다. 이런 ‘낙인 효과’는 대부분 부정적인 상황에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언어의 힘이 막강해지면서 나타난 사용상의 부작용 중 하나이다. 프레임 이론은 이런 ‘낙인 효과’의 확장판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대상이나 현상, 사건 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 나이 든 남자들에게 ‘꼰대’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들이대면, 나이 든 남자들은 ‘꼰대’ 취급을 받거나 ‘꼰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거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프레임은 사람들을 가두고 분열시킨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언어, 사실, 진실이 있는데, 언어는 일종의 가상 세계다.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실제의 세계를 잘 모방했지만 실제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언어’와 달리 ‘사실 인식’은 언어로부터 한 단계 더 깊숙이 들어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를 보고자 한다. 사실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진실 탐구’는 맥락을 통해 사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판단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인간들의 사회가 더 나아지려면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언어에 매몰되어서 판단하면 안되는 이유는 언어가 매우 훌륭한 도구이지만 사실 그 자체는 아니며, 더군다나 진실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아직도 프레임이 판치는 이유는 대중들이 여전히 진실을 추구하기보다는 ‘언어의 세계’에서 안주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고’를 ‘비자발적 고용해제’라고 포장해서 반발심을 낮추려고 하는 것과 같은 행위가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것은 언어의 악의적 조작으로 ‘이중발화’(double speak)라고 부른다.

바야흐르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2024년이 사작되면 양 진영의 책사들은 이전의 방식 대로 열심히 프레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더 이상 유효할지는 의문이다. 이제 대중들은 더 많은 매체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고, 상호 작용도 활발한 편이다. 언어적 프레임에 현혹되어 휘둘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점점 사실을 파악하려 하고, 진실에 다가가고 싶어 한다. 어설픈 프레임 남발은 구태의연한 정치꾼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악의적 프레임은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러니 자명한 사실은 악의적 프레임을 만들어 내는 자들이 우리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목을 막는 훼방꾼들이다. 이제 남은 선택은 당신이 그 훼방꾼들의 의도대로 언어의 세계에서 헤맬 것인지 사실과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할 것인지를 결정할 일만 남았다. 2024년, 대중들이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실 탐구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찬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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