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2단계 계획 실행 부담으로 세계 5대 자산운용사 잇단 탈퇴
미 공화당의 압박과 수익성 약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
전문가 "추가 탈퇴 막을 방안 마련해야"
블랙록/연합뉴스
블랙록/연합뉴스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기업의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촉진하는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 CA 100+)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잇따라 기후위기와 탈탄소 경영을 거둬들이면서 CA 100+를 떠나고 있어서다. 이로 인해 기후행동과 경제적 이익을 모두 놓친 ‘케이키즘’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글로벌 투자사의 CA 100+ 탈퇴로 탄소중립과 투자자의 이익을 모두 놓친 ‘케이키즘’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케이키즘’은 케이크를 먹으면 없어지기 때문에 갖고 있으면서 먹을 수 없다는 뜻으로, 성취 불가능한 두 가지를 가리키는 영국 속담이다.

CA 100+는 2017년 설립된 투자자 중심의 기후행동단체다.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촉진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700개 이상의 투자자가 참여하고 있고 참여기관의 총자산 규모는 68조달러(약 9경814조원) 이상이다.

◆ 탈퇴 러쉬의 결정적 이유 ‘2단계 계획’

최근 글로벌 자산운용사 JP모건과 핌코,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SSGA)이 CA 100+ 탈퇴를 선언했다. 블랙록은 본사가 아닌 글로벌 지사로 참여도를 낮췄다.

JP모건은 탈퇴 이유로 자체적 스튜어드십(Stewardship) 행사 능력을 지녔다고 밝혔다.
핌코는 자사의 지속가능성과 CA 100+의 정책이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CA 100+는 지난 몇 년간 투자 기업들에 △기후변화 위험에 대한 거버넌스 구현 △가치 사슬 전반에 걸친 배출량 감축 조치 △기후관련 재무 정보 공개 강화 등을 요구해 왔다.

1단계 전략은 전 세계 온실가스 다배출기업인 166개사를 대상으로 넷제로(기후변화를 초래하는 온실가스 배출과 흡수가 균형에 이른 상태) 목표 달성과 기후위기에 대한 거버넌스 감독 도입 및 진행 상황 공유를 담고 있다.

오는 6월 시행 예정인 2단계 전략은 온실가스 최대 오염국들이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줄여,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단계이다.

이 계획 발표 당시 CA 100+ 측은 정보 공개를 넘어 기업이 계획 실행에 초점을 맞춰 장기적 주주 가치 창출, 기후리스크와 관련된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형성을 요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단계 전략이 기업들의 탈퇴 행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SSGA가 탈퇴한 결정적 계기도 이 2단계 전략인 것으로 알려졌다. SSGA는 탈퇴 당시 “2단계 전략에서 기업들에 요구하는 사항이 지나치다”며 “자사의 독립적인 접근 방식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블랙록 역시 2단계 전략이 미국 법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기후행동 전환 계획 이행을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CA 100+가 자산운용사에 내놓은 요구사항들이 ‘수탁자 책무’에 위배됐을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수탁자 책무는 자산 운용을 위임받은 자는 본인이 아닌 자산을 공개한 자의 이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 강화되는 미 공화당의 압박과 수익성 약화 우려

미국 공화당의 압박도 한 몫한다. 미국 내에서 ESG투자는 크게 증가했지만, 그 성장세는 2021년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집권한 주(州)를 중심으로 반(反) ESG투자 법안이 채택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들은 ESG투자를 직접적으로 금지하거나 ESG 친화적 금융기관과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또 텍사스주는 지난해 2월 에너지 사업 및 지역 경제 보호를 위해 보험회사에 대한 뱐(反)ESG 법안을 발의했다. 주의회는 ‘에너지 기업 투자 금지 금융사’ 리스트 작성 기준으로 CA 100+ 언급, 이를 근거로 여러 자산운용사를 주정부의 자산 수탁자에서 제외했다.

같은 해 3월에는 연방 의회에서 연기금의 ESG 투자를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의안은 무산됐다. 기후행동 2단계 전략이 회원사가 기업활동에 단체로 관여할 것을 촉구해 미국 반독점법(반트러스트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다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예컨대 ‘석유 공룡’으로 불리는 엑손모빌, 월마트 등 화석연료 생산이나 사용이 많은 기업에 감축을 요구하면 자연스럽게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 ESG 투자도 위축될까?

반대로 ESG 투자 자체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란 평가도 있다. CA 100+ 대변인은 “회원들이 이니셔티브 참여를 통해 기후 위험을 관리하고 주주 가치를 유지하는데 전념 중”이라며 “지난해 가을에만 60개 이상의 새로운 투자자가 추가로 가입했고, 여전히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투자자 주도 참여 이니셔티브 중 가장 큰 규모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후금융 전문가들은 CA 100+ 탈퇴가 투자자들의 ESG 투자 감소를 의미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종합 투자플랫폼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따르면 블랙록의 ESG 관련 윤용 자산은 2022년부터 2023년 말까지 총 53% 증가했다. 현재 블랙록 ESG 펀드 규모는 약 3200억달러(약 427조3280억원)에 이른다.

◆ CA 100+ 서둘러 회원사 달래기

세계 5대 자산운용사가 탈퇴와 활동 범위 축소를 선언하면서 CA 100+가 기후행동과 경제적 이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케이키즘이 나타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그동안 탄소중립 달성과 경제적 이익을 모두 얻을 수 있는지 의심했고, 그린 자산과 그레이 자산에 대한 접근성에도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CA 100+는 투자사들의 반발로 궁지에 몰리자, 회원사 달래기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2일 CA 100+를 조정하는 5개 투자자 네트워크 중 하나인 책임투자원칙(PRI)이 그룹 회원들에 보낸 이메일 서한을 통해 “자사의 접근 방식은 미국의 반트러스트법과 증권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소수 회원의 이탈’로 평가하면서 확고한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A 100+가 더 이상의 탈퇴를 막기 위해서는 화석연료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내려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이 지금 참여하고 있는 각각의 투자 기업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그들의 권한을 사용한다면, 자신의 선택에 따른 사회적 효과를 우선시하는 ‘소수의 투자자’로만 한정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값싼 자본의 물결로 인해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가능성도 낮아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결국 투자자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므로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 스스로 탄소중립을 달성하도록 하기보다는 법적으로 감축을 의무화 해 탄소중립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신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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