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핵심기술 유출해도 1심서 무죄·집유 88%…미국선 간첩죄 수준 처벌
5년간 유출된 산업기술로 25조 피해…작년 적발 23건중 65%가 반도체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

[한스경제=김정연 기자] 반도체 업계의 첨단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핵심 인재들이 해외 기업으로 이직하는 등 기술 유출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기술 유출에 대한 법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서 20년간 D램과 HBM 설계 관련 업무를 담당해 온 직원 A씨는 미국 마이크론의 임원으로 입사해 재직 중이다.

2022년 7월 퇴사한 A씨는 퇴직 후 2년간 동종 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약정서와 국가 핵심기술 등의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약정서대로라면 A씨는 2024년 7월까지 동종 업체 이직이 불가능하다.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재판장 김상훈)는 지난달 SK하이닉스가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고, 위반 시 1일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씨가 근무하며 얻은 정보가 경쟁사 마이크론에 흘러갈 경우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와 동등한 사업 능력을 갖추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는 점 등에 따른 판단이다.

앞서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설계 도면을 빼내 그대로 본뜬 반도체 공장을 중국에 세우려 한 혐의로 삼성전자 전 임원이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전 연구원은 세메스의 기술을 이용해 반도체 습식 세정 장비를 만들어 수출했다가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에 반도체 업계에서는 핵심 기술의 경쟁 업체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중국 견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장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반도체 기술 분야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사건은 전년보다 3건 증가한 23건이었는데 이중 65%인 15건이 반도체 분야였다. 2019~2023년 5년간 적발 건수는 총 96건으로 반도체 분야가 38건(40%)으로 가장 많았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산업기술의 국외 유출 93건의 피해 추정 규모는 25조원에 달한다.

해외 경쟁 업체로의 기술 유출은 나날이 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1심 사건 총 33건 중 무죄(60.6%)와 집행유예(27.2%)가 전체의 87.8%다. 2022년 선고한 영업 해외 유출 범죄 형량은 평균 14.9개월에 불과하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산업기술 유출 범죄를 엄격하게 다루고 있다. 미국은 국가전략기술 유출 범죄를 ‘간첩죄’ 수준으로 처벌하고 있다. 2022년 11월 중국국가안전부 소속 요원이 미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 기술을 탈취하려다 실패한 사건에 20년 중형을 선고했다.

대만은 2022년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등 해외에 유출하면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징역과 1억대만달러(4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기술 유출에 대해 법적 처벌 강화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핵심기술을 국외로 빼돌릴 경우 최대 18년형까지 선고하도록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판례”라며 “강하게 처벌하는 판례가 쌓여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저작권자 © 한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