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후폭풍] 의료계·시민단체, 영리병원 반대 왜?…원희룡 지사 “내가 책임져”
[영리병원 후폭풍] 의료계·시민단체, 영리병원 반대 왜?…원희룡 지사 “내가 책임져”
  • 김소희 기자
  • 승인 2018.12.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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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허가에 의료계·정계·시민단체 “의료민영화 시발점” 비판
영리병원 금지 위한 법·제도적 장치 마련 요구도

[한스경제=김소희 기자]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한 데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제주도청을 항의 방문하는가 하면 정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 입장 발표도 잇따르고 있다. 의료계는 물론 정계와 시민단체 등은 이번 허가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시발점이 될 뿐만 아니라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외국 의료관광객 대상, 성형외과 등 4개 진료과목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허가했다고 밝혔다./제공=제주특별자치도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가 지난 5일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을 외국 의료관광객 대상, 성형외과 등 4개 진료과목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허가했다고 밝혔다./제공=제주특별자치도

◇ 제주도에 국내 첫 번째 영리병원 허가 논란, 왜…원희룡 지사 “내가 다 책임진다”

제주도는 지난 5일 ‘내국인 진료 금지’, ‘성형외과·피부과·내과·가정의학과 등 4개과 진료’,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법 미적용’ 등의 조건을 내걸고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했다.

영리병원은 외부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아 수익을 창출하는 목적으로 운영되면서 발생한 수익을 다시 투자자들에게 돌려주는 형태의 병원이다. 현행 의료법에는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 8곳과 제주도에 한해 영리병원을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영리병원 논란은 김대중 정부 당시인 2002년 12월 경제자유구역에 외국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05년 11월 외국 영리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의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의결, 2015년 12월 녹지그룹이 제주에 설립한 자회사인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가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대한 보건복지부 승인 등으로 논란은 지속돼 왔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하면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제주도가 반대단체의 반발을 감안해 외국인 진료만을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첫 영리병원이고 의료공공성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병원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의료시설 확충과 인건비, 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 목적에 맞도록 재투자하는 비영리병원만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이거나 500만 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에 한해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영리병원이 반드시 수익창출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실례로 인도에 영리병원이 개설된 후 심장병 수술수가가 낮아져 가난한 사람들도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을 들 수 있다”며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의술발달과 의료수가 개선 등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한·중 외교문제 △국가신인도 저하 △손해배상 문제 △직원들의 고용 문제 △토지 반환 문제 △병원의 용도 전환 불가 등을 따져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대신 녹지국제병원 운영상황을 철저히 관리·감독해 조건부 개설허가 취지 및 목적 위반 시 허가취소 등 강력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공론화위의 불허 권고 취지를 적극 헤아려 의료 공공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도지사로서 영리병원 허가에 따른 모든 비난을 달게 받고 정치적인 책임 또한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미 건립된 녹지국제병원을 지역 안에서 인수하는 방안 등을 이야기했으나 (제주도 쪽에서) 답이 없었다”며 “의료 영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밝혔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강지언 제주도의사회장이 6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직접 찾아 영리병원 허가 철회 및 개설 반대에 대한 뜻을 전했다./제공=대한의사협회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과 강지언 제주도의사회장이 6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를 직접 찾아 영리병원 허가 철회 및 개설 반대에 대한 뜻을 전했다./제공=대한의사협회

◇ 의료계 “의료영리화의 시작, 의료계급화까지도 초래 가능”…허가철회·개설반대 주장

의료계는 이번 영리병원 허가를 시작으로 향후 진료대상과 진료범위, 영리병원 추가 개설 등 우려했던 상황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규탄하고 있다.

6일 의료계는 △다른 지역으로의 영리병원 확대 △영리병원 진료과목 추가 △영리병원 진료대상 내국인까지 허용 △병원 계급화 및 국민의 의료계급화 초래 등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제주도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한 셈”이라며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내국인 진료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할 테고 다른 의료 자본들이 영리병원 설립에 필요한 법·제도 변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리병원이 확대될 물꼬가 트이면서 한국 의료체계 전반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의협은 특히 제주도 외 다른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영리병원 개설, 전국적 확산에 따른 의료 양극화 및 국내 의료체계 붕괴 등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최대집 회장과 강지언 제주도의사회장은 6일 원희룡 제주지사를 직접 찾아 ‘의료영리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영리병원 허가 철회 및 개설 반대’의 입장을 전달했다.

최대집 회장은 “의료법 제15조에서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 진료거부를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외국인만 진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국인 진료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영리병원 개설허가 이전에 기존 건강보험제도 내실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언 회장은 “진료영역이 내국인으로까지 확대될 우려가 크고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우려에도 개설이 강행된다면 진료범위 내에서만 녹지국제병원이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조례에 분명하게 명시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의협이 제기하는 문제를 충분히 이해한다. 보완장치를 만들었고 관리감독도 철저히 할 것”이라며 “내국인 피해가 없도록 하고 진료범위를 넘어 내국인을 진료할 경우 개설허가를 취소할 것이다. 조례 제정과 관련해선 의협과 의사회의 전문가적 의견과 자문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의협은 영리병원 개설에 따른 환자·건강·진료 부문의 문제점과 구체적인 사례, 의료계·국민의 우려를 정리해 ‘영리병원 반대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전한다는 계획이다.

의협 한 관계자는 “사유재산을 제한하면서까지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호하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라며 “외교문제 등을 이유로 내세웠는데 이번 문제는 절대 단순한 것이 아니라 가치판단 패러다임까지 바뀔 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윤소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의원,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6일 영리병원 개설 허가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제공=무상의료운동본부
윤소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의원,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6일 영리병원 개설 허가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제공=무상의료운동본부

◇ 정계·시민단체 “과잉의료나 의료비 폭등 등 초래, 제도적 장치 필요”

정계와 시민단체는 영리병원 허가철회는 물론 앞으로 영리병원을 막을 법·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윤소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의원,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같은 날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내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참변이라며 △영리병원 허가 철회 △원희룡 제주지사 퇴진 △영리병원 설립 금지 법·제도 마련 등을 촉구했다.

윤소하 의원은 “영리병원은 우리나라 현행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들면서 의료공공성을 파괴하고 국민건강보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그간 보수정권이 여러 차례 시도했을 때마다 좌초됐던 정책”이라며 “하지만 원 지사는 제주도민의 민의를 무시하고 공론조사위원회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약속마저 저버리며 국민의 건강과 의료를 외국자본에 맡겼다”고 규탄했다.

이어 “영리병원 허가는 과잉의료, 의료비 폭등, 의료양극화로 이어지는 만큼 정부가 손을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정부는 이번 문제에 적극 개입해 영리병원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유재길 무상의료운동본부장은 “이미 영리화될 대로 영리화된 국내 의료체계는 제주영리병원의 허가로 더욱 영리화 추구로 내달릴 것이다.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고 이에 따른 의료 불평등도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그나마 최소한의 규제를 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체계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제주도민운동본부는 지난 5일 녹지국제병원 허가에 대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관련 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문제점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겠다고 전했다. 또 이날부터 원 제주지사 소환운동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