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허인혜] 빗썸 접속 장애로 비트코인 투자자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책임소재를 놓고 논란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여전히 가상화폐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앞으로 제2의 빗썸 사태가 발생할 경우 손해는 투자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의 미래변화를 예측하고 육성방안과 그에 상응하는 규제를 도입·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화폐와 정책과제’ 토론회에서는 가상화폐의 정의와 활용 방안, 규제 등이 폭넓게 논의됐다./사진=허인혜 기자

22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추경호 의원(자유한국당)이 서울 여의도 국회 국회의원회관에서‘가상화폐와 정책과제’ 토론회를 공동주최했다.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면서 지난 12일에는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이 접속장애를 일으켰다. 비트코인 매도 시기를 놓친 투자자들이 빗썸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면서 가상화폐의 위험성도 대두됐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공식 화폐로 인정할 수 없고 금융업으로도 포섭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뚜렷하게 내세워왔다. 중앙은행이 발급한 화폐에서는 당연히 벗어나고, 법망 안에서 발행된 통화도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재차 “금융당국은 가상화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견을 고수해왔다”며 “소비자 보호, 자금세탁과 투자 피해 방지 해법을 공유하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공동 TF를 진행해 관련 방안을 적극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공식적인 규제에도 소극적이다. 가상화폐를 화폐, 지급수단, 금융상품 중 어떤 것으로도 인정하지 않아 규제 대상에 거론할 이유가 없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규제 방안을 밝히면 규제 책임의 짐도 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작용했다. 투기성으로 변질되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화폐공개(ICO)만 전면적으로 금지한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세계적인 가상화폐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가상화폐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영세 계명대학교 특임교수는 “가상화폐는 현재 시장과 같은 환율의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줄여주면서 경제의 예측성과 효율성 증대에 기여하는 등 미래화폐로서 기능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전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향후에는 가상화폐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나라가 국력이 신장될 가능성이 높다”며 “현재 상황에 비교하면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있느냐 수준의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화폐나 지급수단을 '중앙은행'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금융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도 있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가상화폐를 지급수단이나 유가증권 등으로 인정했다. 중앙은행도 대처에 나섰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일부 가상화폐가 증권에 해당한다고 규정했고, 스위스는 투자자보호와 산업발전의 양면을 고려해 고객신원확인과 자금세탁방지를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 거래소를 승인하는 등 가상화폐를 수면에 올려 산업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종진 명지대학교 교수는 "국외 중앙은행들은 자체 가상화폐 발행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새로운 결제수단이 대세로 떠올랐을 때 중앙은행의 통제가 효율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학계와 업계는 가상화폐를 억누르면서 블록체인 기술 전체가 늪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부위원장은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일부분으로 가상화폐를 막는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 개발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지만, IT 선두주자였던 우리나라가 후발주자가 됐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높다.

국제 가상화폐 사업자들은 규제의 틈을 노리고 한국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의 대표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렉스’가 지난달 국내 영업을 시작했고, 일본의 3대 가상화폐 거래소인 ‘비트포인트’도 이달 말 한국에서 문을 연다. 중국의 ‘오케이코인’도 올해 말을 목표로 영업망을 구축하는 중이다.

신승현 데일리금융그룹 대표는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등 금융 변화를 인정하고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을 고려하는 등 발 빠르게 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 발의를 두고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추 의원은 “가상화폐를 인정하느냐, 제도권 안에서 규제하겠느냐의 방향성은 확정하지 않았다”며 “다만 가상화폐 시장이 확대되면서 자기 책임 아래 가상화폐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그대로 방치해서는 되겠는가에 대해 정책과제를 점검하고 방향성을 서서히 잡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면 의견을 수렴하고 시장 상황을 보아 나가면서 국회에서 다루겠다”고 답했다.

허인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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