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시간 싸움' 스포츠, 타임키퍼의 중요성
오메가·태그호이어·론진·세이코 등 시계브랜드, 올림픽 등 다양한 대회 타임키퍼 활약
한국, 세계적 브랜드 없어 자국 대회서도 해외 브랜드 사용
올림픽 타임키퍼 대명사 오메가. /오메가 제공

[한국스포츠경제=권혁기 기자] 시계의 역사는 길다. 인류 최초의 시계인 해시계는 수직으로 세워 놓은 막대기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알아내는 방식이었다. 물시계는 물의 증가 또는 감소로 시간을 측정했다. 타 없어지는 기름의 양을 보고서 시간을 측정하는 불시계도 있었다.

시계는 세상을 바꾼 발명과 혁신이다. 시계가 없는 세상은 이제 상상할 수 없게 됐다. 휴대전화,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시계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지만 시계는 시간을 보는 것 외에 액세서리 기능도 있다.

그 가격도 천차만별인데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는 다이아몬드 회사 그라프(Graff)에서 제작한 시계 '환각'이다. 멀티컬러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환각'은 만화경을 보는 듯 착각하게 만드는 시계로 가격은 5500만 달러, 한화로 612억 7550만 원이다. 이벤트성 시계가 아닌 전문 시계 브랜드 중에서는 파텍 필립에서 만든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이 2398만 달러(약 267억 1611만 원)로 가장 비싸다. 1925년 미국 금융 부호 헨리 그레이브스가 주문해 5년에 거쳐 제작됐다.

시계는 시를 분, 초 단위로 나눌 수 있게 해줬다. 이는 '기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스포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세이코(왼쪽)와 태그호이어 제품들. /사진=연합뉴스

◆ 타임키퍼로서의 시계 브랜드

4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 스포츠 경기 대회 올림픽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열렸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유래된 제1회 아테네 올림픽 타임키퍼(Time Keeper)는 론진(LONGINES)이었다. 타임키퍼란 주심의 지시에 따라 시간을 계측하는 것을 말한다.

1832년 탄생한 론진은 스위스 작은 마을 쌍띠미에(St. Imier)에서 출범했다. 론진은 특히 승마, 경마 경기에서 공식 타임키퍼로 활약 중이다. 1878년 최초로 1/15초까지 측정 가능한 도구를 만든 론진은 경마 기수와 그가 말에 올라탄 모습이 새겨진 크로노그래프 시계를 생산하면서 마(馬) 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1926년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승마대회에서 타임키퍼로 활동했다. 과거 삼성이 론진에서 부품을 수입해 시계를 제조한 적이 있다. 이때 삼성은 임원들에게 론진 시계를 줬다. 현재는 스와치 그룹에 편입돼 있다.

태그호이어(TAG Heuer)도 올림픽 타임키퍼로 활약했다. 태그호이어는 1916년부터 1928년까지 올림픽 타임키퍼였다. 불가리, 프레드, 제니스, 쇼메, 위블로 등과 함께 세계적인 사치품 대기업 LVMH(모에&샹동·헤네시·루이비통, Moët Hennessy Louis Vuitton SE) 산하 브랜드다. 1860년 설립된 호이어를 태그가 인수하면서 현재의 브랜드네임을 갖게 됐다. 태그호이어는 시계 매니아들 사이에서 럭셔리 시계의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다는 의미다. 의도치 않게 2002년 한일월드컵 특수를 누리기도 했는데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찬 시계가 태그호이어 제품이었기 때문. 태그호이어는 히딩크 감독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 덕분에 손 안대고 코를 풀었다.

일본 브랜드 세이코(SEIKO)도 자국 올림픽 타임키퍼로 채택된 바 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의 타임키퍼였다.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마라톤 금메달을 땄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타임키퍼도 세이코였다. 2년 뒤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타임키퍼 자리도 꿰찼다. 1881년 설립된 세이코는 1969년 세계 최초로 상용 쿼츠 손목시계를 생산하면서 스위스 브랜드 천하였던 시계 업계를 흔들었다. 쿼츠 시계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아닌 크리스털과 IC 회로 등 몇 개의 부품만을 쓰는 제품이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타임키퍼는 독일 브랜드 융한스(Junghans)로 선정됐다. 1861년 창업돼 탁상시계, 벽시계를 제작하다 1927년부터 손목시계로 분야를 넓혔다. 1903년 직원 수가 3000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시계 회사였다. 독일 출신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융한스 시계를 차고 다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스위스 브랜드 티쏘(TISSOT) 역시 타임키퍼 경험이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론진과 공동),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도하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였다. 티쏘도 '스와치 그룹'이라는 우산을 쓰고 있다.

지난 2월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오메가 평창 동계올림픽 서울전시장 오픈식에 참석한 알랭 조브리스트 오메가타이밍 CEO. /사진=연합뉴스

◆ 독보적인 올림픽 타임키퍼 오메가

올림픽 타임키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바로 오메가(Omega)다. 그리스어 24개 알파벳 중 가장 마지막 단어로, 끝·완성·완성품·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만들어진 네이밍이다. 오메가는 1848년부터 시계를 제작했다. 현재는 스와치 그룹 산하 브랜드인 오메가는 1932년부터 총 27번이나 올림픽 공식 타임키퍼로 활동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타임키퍼도 오메가였다.

특히 수영에서는 오메가가 독보적이다. 1968년 처음 도입한 터치패드 시계 때문이다. 융한스가 공식 타임키퍼였던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도 수영만큼은 오메가가 타임키퍼를 맡았다. 당시 남자 수영 400m 혼영 결승에서 스웨덴 거너 라슨과 미국 팀 맥키가 4분31초98로 동시에 들어왔다. 이 때 1/1000초까지 측정 가능했던 오메가는 라슨이 4분31초981, 맥키가 4분31초983이었다고 확인해 금메달은 라슨의 목에 걸렸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오메가와 2032년까지 파트너십 계약을 연장했다. 국제수영연맹(FINA)과도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 오메가는 타임키핑 기술을 계속 향상시키고 있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타임키퍼를 맡게 되면 천문학적인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투자도 해야 한다. 세이코는 오메가가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시계 제작비, 운영 요원 경비로 약 46억 원을 요구해 제외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시계 제작비로만 15억 엔(현재 148억 9830만 원, 당시 90억 원)을 투자했다. 운영요원 250명을 자사 부담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세이코는 올림픽 타임키퍼 자리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가 없다. 로만손(Romanson)이 1988년 설립돼 중동 등 전 세계 70개국에 수출되는 쾌거를 이룩했지만 자사 무브먼트가 없어 스위스 론다, 일본 미요타, 스와치 그룹 에타 무브먼트를 사용하고 있다. 로만손 외에 포체(Foce) 등 몇몇 브랜드가 있지만 시장 점유율은 크지 않다.

한국 시계 산업이 급격히 발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더라도 올림픽 타임키퍼로 채택될 확률은 극히 낮다. 오메가가 타임키퍼 역할을 확실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인정할만한 기술력을 갖춘다면 향후 한국에서 열리는 하계·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자국대회 타임키퍼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권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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