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한스경제=임병식 논설위원] “운명은 거스르는 자는 끌고 가고 순응하는 자는 태우고 간다.”

고대 철학자 세네카의 이 말은 기후위기 시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암시한다. 세계 곳곳은 이상기후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한지 오래다. 폭염과 가뭄, 홍수, 이상 한파, 빙하 붕괴, 해수면 상승, 생물다양성 파괴 등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끓는 지구’는 이미 일상이 됐다. 올해 일본, 중국, 베트남을 다니면서 느낀 공통점은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였다. 지독한 폭염은 유럽대륙과 북아메리카, 아시아를 가리지 않고 5대양 6대주를 벌겋게 달구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1일 ‘탄소 국경세 도입’에 시동을 걸었다. EU는 2026년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앞서 2025년 말까지를 전환기로 정하고 탄소 배출량 보고를 의무화했다. 해당 품목은 철강과 시멘트, 전기, 비료, 알루미늄, 수소 등 6개다. 이에 따라 제3국에서 EU국가로 이들 품목을 수출하려면 탄소 배출량을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선택이 아닌 의무다. 첫 보고서는 2024년 1월 말이다. 만일 기한을 어기거나 보고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된다. 벌금은 톤(t)당 50유로(7만원)다. 우리 기업은 140곳이 영향권에 들어가며 2026년 이후 매년 1,800억 원에 달하는 탄소세를 부담해야 한다.

EU가 탄소세를 도입한 첫째 이유는 역내 기업보호다. EU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55% 감축을 목표로 ‘Fit for 55’를 시행 중이다. 환경규제 때문에 EU내 저탄소 제품 생산 기업은 가격 경쟁력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중국과 인도산 제품은 가격경쟁에서 우위에 있다. 중국과 인도가 CBAM에 반발하는 이유 또한 자국 산업 보호 때문이다. 중국 기후특사는 공식 석상에서 “탄소세는 ‘일방적’이며 국제사회가 연대해 반대하자”고 촉구하기도 했다. 탄소세를 도입한 두 번째 이유는 이상기후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EU는 기후위기를 방치할 경우 ‘다음 세대는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저개발 국가들은 탄소세에 부정적이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반대 논리다. 서구는 환경 규제가 느슨할 때 높은 경제성장을 달성했음에도 이제와 자신들에게만 환경을 강화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중국과 인도는 CBAM은 자유 시장경제 논리와 배치되며 WTO 협정에도 상충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 `우리기업들도 이 같은 논리에 편승해 미온적이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가자는 입장이다. 철강업계는 가장 타격이 큰 분야다. 지난해 유럽으로 수출한 우리 철강제품은 48억 달러(6조3,800억원)에 달한다. 현 ‘고로(高爐)’ 제철 공정은 석탄을 환원제로 쓰기에 탄소세 부담은 상당하다.

다행히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제철 대기업은 저탄소 인증에 골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포스코는 지난해부터 TF를 운영하며 중장기 대응에 나섰고, 현대체절 또한 통상 전략실을 설치하고 저탄소 인증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아울러 이들 기업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활용하는 공법을 채택하거나 저탄소 강판 생산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는 2050년까지 수소제철 방식으로 전면 대체한다는 구상이다. 또 현대제철은 2026년 CBAM 시행에 앞서 탄소 배출량을 20% 낮춘 저탄소 강판 보급에 나설 계획이다. 3년 앞으로 다가온 탄소세 시행을 맞추기에는 돈과 시간 모두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리 기업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능동적인 인식 전환이다. 어차피 탄소세 도입이 피할 수 없는 국제 기준이라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ESG경영에도 도움이다. 차일피일 미룬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손실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는 인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인식 아래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 또한 기업들이 전환기에 능동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크레타 툰베리가 세계적인 기후학자, 환경행동가들과 함께 쓴 ‘기후책’에 따르면 지구 공멸은 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구 상승 온도를 1.5도로 유지하려면 8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한가하게 차별이니 사다리 걷어차기니 하며 책임을 회피할 일은 아니다.

위기가 코앞에 왔다. 국제사회에서 존경받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라면 중국이나 인도와는 달라야 한다.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해 끌려가기보다 끌고 가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ESG경영을 고민할 때다.

 

임병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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