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 전 국회 부대변인

[한스경제=임병식 논설위원] 지난 6일 일본 교토 인근 아라시야마(嵐山)는 찜통이었다. 좀처럼 양산을 쓰지 않는 미국인과 유럽인들조차 양산을 펼치고 부채질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덴류지(天龍寺)까지 400m 남짓한 거리를 걷는 내내 굵은 땀줄기는 멈추지 않았다. ‘너무 덥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목적지를 향해 시동을 건 순간 눈을 의심했다. 외부 기온은 40도를 가리켰다. 킨카쿠지(金閣寺)와 긴카쿠지(銀閣寺),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일정을 포기했다. 서둘러 숙소로 향해야 할 만큼 사나운 더위였다. 그날 저녁 뉴스는 39도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 체류하는 일주일 내내 폭우와 폭염 사이를 오갔다는 생각에 미쳤다.

서울에 도착해서도 변덕스러운 날씨를 만났다. 11일 서울 일부 지역은 사상 첫 ‘극한 호우’ 재난안전문자가 발송됐다. 극한 호우는 1시간에 50mm와 3시간에 90mm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는 비가 내렸을 때다. 폭우로 올림픽대로 하남 방향 진입 구간과 동부간선로 의정부 방향, 내부순환로 성산 방향 일부 도로가 잠겼다. 지난해 여름 서울 한복판 강남 서초동 일대 침수를 떠올리게 했다. 같은 날 일본 후쿠오카 현 남부 구루메(久留米)는 역대 최고(24시간 동안 402.5mm) 폭우가 쏟아져 5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지난 10여 일 동안 물 폭탄과 폭염은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번갈아 가며 강타한 셈이다.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는 게 한국과 일본뿐일까. 세계는 매년 폭염과 홍수, 산불, 한파 등 기후재앙으로 몸살하고 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2021년 기후 보고서에서 “인간의 영향 때문에 대기와 해양, 육지가 온난화해지고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기권, 해양권, 빙권, 생물권에서 광범위하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산업화(1850년) 이후 지구 평균 온도는 1.2도 상승했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영향’은 인간에 의한 자연과 생태 파괴를 의미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쌓여 기후재앙을 재촉하고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그레타 툰베리가 전문가 100명과 함께 쓴 <기후 책>을 탐독했다. 57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이다. 그레타 툰베리는 열다섯 살이던 2018년 스웨덴 의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운동을 시작한 스웨덴 환경운동가다. 이후 툰베리는 다보스포럼과 미국 의회, 유엔에서 기후변화 실상을 알리며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기후 책>은 기후변화 심각성을 열거하며 당장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IPCC와 툰베리 활동에 힘입어 많은 이들은 지구 온도를 1.5도 이내로 묶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툰베리는 인류는 이미 탄소 예산의 90%를 썼고, 1.5도를 유지하기까지 8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그런데도 위기감과 경각심을 갖지 못한 채 관성처럼 탄소를 소비하고 있는 현실이다. 탄소배출은 특히 산업화가 활발한 선진국에서 왕성하다. 미국이 1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또한 지구를 데우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는 아니다. 전 세계 소득 상위 1% 부자들은 하위 50% 사람들보다 두 배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상위 1%에 해당하는 미국인 1900만 명, 중국인 400만 명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더 많은 소비를 못 해 안달하고 있다. 자신들의 무절제한 소비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기후위기로 몰고 있다. 기후 불평등은 공정하지 못하다.

책에 나오는 ‘글로벌 위어딩(기후 괴이화·weirding)’란 용어는 섬뜩하다. 캐서린 헤이호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라기보다 지구 괴이화라고 규정했다. 그는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두 개가 모두 7이 나오는 건 괴이한 현상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상기온을 반복하는 지구가 그렇다”고 했다. 2003년 평년을 10도 이상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7만 명이 숨지고 포르투갈 숲 10%를 잿더미로 만든 서유럽, 또 2021년 49.6도까지 치솟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일본 교토에서 만난 40도, 그리고 서울에서 맞은 사상 첫 ‘극한 호우’ 경보도 괴이하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기후 괴이화를 피할 수 없다.

 

임병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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