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재웅] 현대차가 미국 투자를 늘린다는 소식에 국내 자동차업계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미국 비중을 늘리는 대신 국내 투자를 줄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다.

▲ 본격적으로 세계 고급차 시장 공략에 나서는 제네시스. 전량 울산 공장에서 생산된다. 현대자동차 제공

정진석 현대차 사장은 17일 외신에 향후 5년간 미국에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수요가 있다면 제2공장도 고려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공장 건립비용이 10억~15억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40억~50억달러 이상을 미국에 투자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국내 정책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혹시라도 현대차가 국내 생산 물량을 미국 공장으로 가져가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 제2공장 건립이 현실화되면 제네시스 등 주요 수출 차량이 미국으로 옮겨갈 가능성도 적지 않다.

현대ㆍ기아차는 이미 미국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미국 현지 생산으로 조달하고 있다. 연간 약 140만대 중 73만대가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과 조지아 기아차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현대차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조만간 더 큰 결단이 나오지 않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앞서 트럼프는 미국에 진출해 있는 자동차 업계에 관세와 제재 등으로 협박하며 미국내 투자를 늘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미 토요타는 최근 5년간 100억달러 투자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당장 현대차는 전혀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일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정 사장이 외신에 투자 계획을 소개했던 것도 질문에 대한 답이었을뿐 트럼프를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투자 계획 발표는 이미 예정했던 것으로 특별한 것이 없다”며 “미국 제2공장 건립도 수요가 있으면 만들겠다는 이전 입장과 똑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봐도 현대차가 발표한 미국 투자 내용은 생산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미래 신기술 개발과 공장 환경 개선 등 매년 진행해왔던 것들 뿐이다.

종전 투자 비용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나지도 않았다. 현대차는 지난 5년간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를 미국에 썼다. 1년에 2억달러(약 2,500억원)정도만 더 늘었다. 울산, 아산, 화성 등 국내 투자비용이 연간 12조5,000억여원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미미한 정도다.

공장 증설 가능성도 현지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높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미국 시장 수요가 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대차도 아직 현지 생산량 부족을 느끼지 못한다. 앨라배마 공장 가동율이 100%를 넘긴 했지만 조지아 공장과 배분을 통해 소화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가 긴장하는 것은 현대차가 국내 생산 비중을 줄이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차는 해외 판매량 중 국내 생산분이 30%를 밑돌고 있다. 작년 기준 해외 판매량 420만1,407대 중 101만406대(24%)만이 국내 공장에서 태어난 차다. 2015년(27.1%)보다 더 줄었다. 국내에서 생산ㆍ판매된 수량(65만8,642대)을 합쳐도 34.3%에 불과하다.

기아차 상황도 다르지 않다. 작년 해외 판매량 248만5,217대 중 41%인 101만7,767대 만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됐다. 국내 생산ㆍ판매량까지 합치면 51%까지 비중이 올라가지만 전년(56.5%)과 비교하면 줄었다.

정 사장이 제네시스 수요가 있다면 제2공장을 지을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도 업계 우려를 더한다. 정 사장은 “SUV도 있고 제네시스도 있는데, 공장을 짓는다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싼타페 등 SUV는 미국 공장에서도 생산 중이지만 제네시스는 전량 국내 울산 공장에서 생산 중이다. 수요가 크게 늘지 않는 한 미국 생산이 시작되면 국내 공장 타격은 불가피하다.

노조에서도 조만간 이런 현대차의 미국 투자 계획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대차 근로자는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위기 의식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있긴 하다”이라며 “하지만 사측이 생산 배분을 제대로 해야할 것”이라고 의견을 냈다.

김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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