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 김서연] #. ‘여성, 20대, 서울, 언론계 종사’. 자신의 성별, 연령대, 거주지, 직업 등 정보를 입력했더니 비슷한 정보를 가진 고객의 금융생활을 분석한 자료가 화면에 나타났다. 이를 기반으로 그들은 한 달에 저축을 얼마나 하는지, 소비 금액은 어느 정도 되는지, 어떤 금융상품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 신뢰도 높은 상담이 가능해짐은 물론, 직원 개개인의 역량 및 업무 경험에 따라 현실적으로 동질의 상담을 받을 수 없었던 근본적인 문제도 ‘빅데이터’로 해결됐다. (신한은행)

#. 점심시간,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 광화문의 한 은행을 찾은 A씨. 대기표를 뽑으니 20번대를 훌쩍 넘어간다. 다음에 다시 방문할지 고민하는 이때, 객장 매니저가 A씨에게 다가와 ‘어떤 업무를 원하냐’고 묻고 URL 하나를 A씨의 휴대폰으로 보내준다. 대출신청서다. A씨가 휴대폰으로 신청서를 미리 작성하고, 이를 직원이 불러와 업무를 처리한다. 영업점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국민은행)

신한은행 ‘빅데이터 기반 상담 서비스’ 예시. 사진=신한은행

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 등 4대 은행 영업점이 관행적인 영업행태를 벗고 혁신을 입고 있다. 영업점을 줄이는 추세로 온라인·모바일로 영업 영토가 옮겨간 지 오래지만 영업점을 찾는 고객들이 꾸준하다면 타행과는 달라야 한다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의 수장들 역시 이를 우선과제로 올려둔 상태다. 최근 취임한 허인 국민은행장도, 손태승 우리은행장 내정자도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영업점에서의 혁신’을 언급했다.

허 행장은 디지털 뱅크를 핵심 전략으로 꼽으면서도 전통적인 금융업이 핀테크로 대변되는 디지털을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가져갈 것을 언급했다. 지점과 인력 운용 방향에 있어 일어날 변화에 대해 한 지역의 고객 형태와 고객 수요에 따라 그 지역의 지점들이 역할을 분담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손 내정자는 ‘허브 앤 스포크(Hub&Spoke)’ 제도를 통해 중심점포 위주로 영업을 하고 대면채널과 비대면채널의 전반적인 채널 전략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은행들은 ‘오프라인 영업’이라는 큰 틀 속에서 저마다 다른 전략으로 고객을 맞아야 하는 시대를 맞게 됐다. ‘디지털 영업점’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위한 전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신한은행은  신한카드 사장 시절부터 디지털과 빅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위성호 신한은행장의 ‘디지털 경영’이 영업점 창구에서부터 시작됐다.

‘빅데이터 기반 상담 서비스’가 그 일환이다. 창구에 비치된 태블릿PC를 통해 고객 분석 자료들을 기반으로 상담이 이뤄지는 서비스다. 본인의 성별, 연령대, 거주지, 직업 등 정보를 입력하면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고객들의 금융생활 관련 분석 자료를 함께 볼 수 있다. 분석 자료에서는 고객과 같은 조건을 지닌 다른 사람들의 월 평균 소득, 자가주택 소유 여부, 월 저축 및 소비 금액 등 평균적인 금융생활 정보와 이들의 금융상품 유형별 보유 현황 및 규모까지 자세히 나온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장점은 영업점 직원에 따라 상담의 질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빅데이터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직원에게 금융상담을 받든 일관된 품질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비슷한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는 금융상품이 무엇인지도 확인할 수 있어 고객들의 재무 포트폴리오 관리와 금융상품 선택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영업점에서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여주는 방법을 택했다. 영업점 방문 고객이 대기시간 동안 대출신청, 통장 재발행 등의 금융거래 신청서를 휴대폰으로 미리 작성해 업무처리 시간을 줄여주는 ‘KB모바일 사전 업무신청’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상담 직원은 고객이 미리 작성한 신청서를 불러와 업무를 처리한다. ▲신용대출 ▲부동산담보대출 ▲전세대출 ▲통장 및 인감 분실 재발행 서비스가 현재 가능하다. 이번 달 중 인터넷뱅킹 신규까지 확대한다.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거나 공인인증서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영업점의 객장 매니저가 고객에게 URL을 전송하면 해당 업무의 신청서 작성을 바로 할 수 있다.

우리은행은 로봇이 은행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로봇이 고객을 맞는다는 점에서 고객에게는 가장 피부에 와닿는 혁신인 셈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10월부터 세계 최초 감정인식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Pepper)를 도입해 본점영업부, 명동금융센터, 여의도금융센터에서 고객을 맞는다.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앱)을 탑재한 페퍼는 인사, 창구안내, 금융상품 추천, 이벤트 안내 등의 업무를 수행 중이다. 아직 고객을 맞이하고 간단한 상품을 안내하는 수준이지만, 앞으로 고객에게 직접 금융 상품을 설명하고 주택담보대출과 같은 개인용 대출 심사 등에도 로봇 은행원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객이 원하면 찾아간다’를 모토로 삼아 영업점 밖에서 ‘혁신’을 꾀한 은행도 있다. 고객을 직접 찾아가는 대출 상담 서비스를 시행한 KEB하나은행이다. KEB하나은행 고객이 아파트정보 서비스 제공업체 ‘호갱노노’의 인터넷 사이트나 모바일, 앱 등을 통해 아파트 대출상담을 신청하면 KEB하나은행 직원이 직접 방문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빅데이터나 디지털 등이 은행을 비롯해 금융권에서 매년 떠오르는 화두가 된지 오래여서 디지털 영업이라는 같은 영역 안에서 타행과 차별화를 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디지털 영업을 어느 은행이 잘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면 채널에서의 장점과 얼마나 잘 융합시키면서도 새로운 전략을 찾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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