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감독과 작별할 때
[한스경제=박종민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 경질론의 발단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탈락이라는 부진한 결과라기보단 불성실한 준비 과정이었다.
과정은 어찌 됐든 우승이란 결과만 내면 된다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재택, 외유 논란과 관련한 숱한 비판에 그가 한 변명은 늘 “아시안컵 결과를 지켜봐 달라”였다. 대회 일정을 마친 뒤 8일 인천공항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일단 4강까지 진출했다는 점에서 실패라 말할 순 없다”며 웃었다. 대회 6경기에서 모두 졸전을 펼쳤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4강’이란 표현에 안도했다.
푸른 눈의 독일 출신 감독은 한국 사회 특유의 정(情) 문화를 간과했다. 사실 결과가 좋지 못했더라도 과정이 좋았다면 여론도 지금의 비판 수위는 아니었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면 좋지 못한 결과도 어느 정도 용서가 되는 게 한국 사회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그러나 클린스만호 경기엔 ‘졌잘싸’가 없었다. 오히려 "졌으니 짐 잘 싸라"는 비아냥이 어울릴 법했다.
명장이 되기 위해선 ‘빌드업’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빌드업은 선수단을 이끌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물론 축구에서도 최후방부터 중원, 공격진까지 연결되는 빌드업은 매우 중요한 전술이다. 파울루 벤투 전 대표팀 감독은 빌드업 축구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상 2번째 원정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신태용 전 대표팀 감독은 미디어에 친화적인 감독이었다. 말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수용적인 면모도 보였다. 벤투 감독은 꽤 프로페셔널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벤투 감독님의 성격이 재미있거나 그러진 않고 철두철미했지만 (자기 사람인) 스태프에겐 털털하면서도 편안하게 대해주시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리더의 측면에서 클린스만 감독에게 좀처럼 장점을 찾기가 어렵다. 과정을 잘 빌드업해 나가는 리더도 아니고, 그렇다고 결과를 내는 리더도 아니다. 좋은 리더의 핵심 중 하나는 ‘신뢰’다. 클린스만 감독은 작은 신뢰를 쌓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재택이나 외유를 통해 스스로 박차버렸다. 대표팀 외부에서 일찌감치 신뢰를 잃은 수장은 선수단 내에서도 신임받기 어려웠다. 무(無)전술은 선수들만 힘들게 했다.
시험에서 낙제한 클린스만 감독은 오답 노트를 마련하는 자리도 ‘패싱’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안컵 결산 자리인 전략강화위원회가 이번 주 개최될 예정이지만, 일찌감치 미국 자택으로 간 클린스만 감독이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명장으로서의 첫걸음(빌드업)조차 떼지 못한 감독이 좋은 결과를 내기란 요행을 바라는 것에 가깝다. 클린스만은 여태까지 한국 축구가 경험하지 못한 유형의 감독이다. 신뢰를 빌드업해 나가지 못하는 무전술 감독에게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천재들을 지휘하게 하는 건 한국 축구가 뒷걸음질 치는 가장 빠른 길이다. 계약 기간이 2년 이상 남은 2026 북중미 월드컵까지라면 더 그렇다. 이쯤에서 클린스만 감독과 작별하는 게 한국 축구를 위하는 길이다.
박종민 스포츠부 팀장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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