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MLB에 데뷔했을 때 사용한 글러브와 함께 시구
"30년 후인 오늘 다시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굉장히 기쁘다"
[고척=한스경제 강상헌 기자] "30년 전 마운드에서 썼던 글러브를 박물관에서 가져왔다. 의미 있는 시구를 이 글러브와 함께하게 됐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데뷔하며 한국 야구의 해외 진출 길을 개척한 지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마침 올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LA 다저스가 맞붙는 MLB 정규리그 개막전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다. 그리고 첫 경기 시구는 박찬호가 맡는다.
시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박찬호는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처음 미국에 진출하고서 30년 후에 (서울에서 열리는 MLB 개막전에 시구를 하게 돼 감명 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 시구 때 사용할 야구글러브를 들어 보였다. 그는 "30년 전 마운드에서 썼던 글러브를 박물관에서 가져왔다. 의미 있는 시구를 이 글러브와 함께하게 됐다. 뜻깊은 하루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시구에서 사용하는 글러브는 특별한 추억이 담겨 있는 물건이다. 그는 "(제가 다저스에서 뛸 당시 사령탑이던) 라소다 감독이 경기 후 '한국인 선수가 MLB에서 첫 삼진을 잡은 공이다'라고 말하며 공을 줬었다. 그 공은 저에게 소중한 보물이 됐다. 이후로 제가 쓰던 물건을 다 소장했다. 모으는 습관을 들였고 쓰면서도 소중히 하고 관리하는 데도 노력을 많이 했다"며 "이 글러브는 1994년 처음 MLB에 데뷔했을 때 썼다. 그만큼 가치가 있는 글러브다. 30년 후인 오늘 다시 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잘 간직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굉장히 기쁘다"고 활짝 웃었다.
박찬호는 선수 시절 다저스에서 9년간 84승 58패 평균자책점 3.77 탈삼진 1177개를 올렸다. 그는 "다저스는 첫사랑과도 같다"고 운을 떼며 "IMF 때 한국이 굉장히 어려웠다. 그때 다저스의 파란 유니폼 스포츠가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줬다. 모두가 파란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의 활약을 기대하고 응원했다. 승리했을 때는 같이 기뻐하기도 하고 잘 안됐을 때는 함께 힘들어하기도 했다"며 "단순히 야구를 좋아한 것을 넘어서 다저스는 이들에게 삶의 한 부분이었다. 지금 50~70대 사람들에게 다저스는 가슴 깊이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 MLB가 한국에 깊이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싶다"고 했다.
다저스에도 박찬호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박찬호에 대해 "MLB 불모지에 유산을 남긴 선수다. 야구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책임감도 대단하다. 한국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젊은 야구 선수들이 차세대 박찬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끔 했다. 다저스와 인연을 가지고 있어서 기쁘다"고 전했다.
샌디에이고 특별 고문인 박찬호는 샌디에이고의 유니폼을 입고 MLB를 누비기도 했다. 두 시즌 동안 11승 10패 평균자책점 5.08을 기록했다. 샌디에이고와 한국의 인연은 현재 진행 중이다. 박찬호가 샌디에이고의 특별 고문을 맡고 있고, 2021년 김하성은 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또한 올 시즌을 앞두고 샌디에이고의 유니폼을 입은 고우석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박찬호는 서울서 열리는 MLB 개막전에 나서는 김하성에 대해 "첫해에는 굉장히 어려웠다. 점점 이겨냈다. 지난해에는 많은 성장을 이룬 끝에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한국 선수의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며 "성장 과정을 보면 야구를 잘해진 것뿐만 아니라 인성도 단단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성숙해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선배로서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미소 지었다.
이날 다저스(오타니 쇼헤이·야마모토 요시노부)와 샌디에이고(김하성·다르빗슈 유·마쓰이 유키)의 개막 로스터에 든 아시아 출신 선수만 5명이다. 이에 박찬호는 "30년 전에는 제가 혼자였다. 이후 (일본인 선수인) 노모 히데오와 함께 팀 동료로 활약하면서 동양의 MLB 분을 더 활짝 열었다. 그 뒤로도 한국, 일본, 대만의 많은 선수들이 MLB에서 활약했다"며 "동양 선수들이 MLB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저와 노모의 나무가 튼튼하게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이 나무에서 자란 열매들이 MLB를 이끌어 가는 선수들이 되고, 동양의 야구 선수들이 MLB를 꿈꾸며 도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응원했다.
강상헌 기자 ksh@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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