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요약 AI 적용, 성 착취 영상 속 동일 인물 식별... ‘박사방’ 텔레그램 대화방 피해자 74명에 달해
IT기술 무기삼아 피해자 협박까지 죄질 나빠... 디지털 공간 특성 고려해 잠입 수사 등 도입 필요
정부 ‘디지털 성범죄 탐지기술개발’ 사업 기획... 영상 변형 되더라도 효율적 신속한 추적 가능
디지털 성범죄가 급증해 정부가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나섰다. 그래픽=이석인 기자

[한스경제=마재완 기자] 지난 3월 ‘박사’ 조주빈(25)이 긴급 체포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현우)는 지난 11일 1차 공판을 열었다. 조씨는 아동청소년법 위반, 협박 등 무려 14개의 혐의를 받아 기소된 상태다. 지난 22일에는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추가 기소되며 15개로 늘었다.

그러나 조씨가 피해자에 대한 강요나 협박 등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향후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른바 박사방 사건으로 사회 전반에 수면위로 급부상한 사회 속 디지털 성범죄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해법을 취재했다. <편집자주>

조씨가 운영한 박사방은 여성 성 착취물 동영상 제작·유포가 이루어지는 텔레그램 대화방이다. 적어도 지난해 5월부터 운영돼온 것으로 알려진 박사방은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약 74명에 달하며 이중 미성년자도 16명이 포함돼 있다.

성 착취물 영상 유포를 위한 텔레그램 대화방은 박사방이 처음은 아니다. ‘갓갓’으로 불리는 문형욱(24)은 지난 2015년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성 착취물 영상을 제작·유포했다. 2018년에는  1~8번까지 번호가 붙은 속칭 n번방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켈리’라는 사람에게 실질적인 n번방 운영권을 넘겼고 조씨는 이러한 시스템을 모방해 박사방을 개설·운영해왔다.

조씨가 개설한 박사방은 ‘입장료’가 존재한다. 성 착취물 영상을 보려는 사람이 일정 금액을 가상화폐로 지불하면 지불 금액에 따라 세 가지 대화방 중 하나로 초대되는 시스템이다. 단순 유희 목적이었다고 주장하는 n번방과 달리 박사방은 IT 기술을 무기삼아 피해자 협박 단계까지 나간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조씨가 검거되자 n번방과 관련된 모든 이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박사방에 참여한 사람이 2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처럼 공론화가 되면 주범들이 처벌받을 수 있지만 문제는 여전히 비밀 대화방 등이 비밀리에 운영되고 있어 성 착취 범죄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라며 “조주빈은 검거됐지만 박사방 이용자들은 플랫폼을 옮겨 다니면서 성 착취물을 유통하고 있어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착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잠입 수사 등을 허용하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사회적인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만들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 착취 범죄를 저지른 '박사' 조주빈(25)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척결, 정부가 나섰다

정부도 사건의 중대성을 인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칼을 빼들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와 협력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한 ‘AI 적용 디지털 성범죄 탐지기술개발’ 사업 기획에 착수했다.

주요 사업내용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피해자 지원이다. 특히 유포된 영상 추적 등 전반적인 수사, 피해자 지원 과정에 AI를 적용해 효율화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한다. 최우선 과제로 AI를 적용한 영상 내 동일 인물 식별 기술 개발이 연내 시작된다.

이번 사건처럼 성 착취물 동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것에 대비해 사진 등 제한된 정보만으로도 영상 속 인물의 동일인 여부를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불법적인 추가 유포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기존에도 영상 속 인물 식별 기술은 존재했으나 이번에 개발되는 기술은 AI가 접목되는 만큼 유포되는 영상이 일부 변형 되더라도 보다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추적할 수 있다. 아울러 빅데이터를 이용해 불법 영상 유포 등 범죄 발생 범위를 한정하는 기술 개발도 점진적으로 추진된다.

정부는 지난 21일 디지털 뉴딜 관련 공모 과제 중 하나로 딥페이크 방지영상 AI 데이터 구축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뉴딜 3차 추경 예산 일부도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집행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디지털 뉴딜 핵심 사업인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사업’ 20개 공모 과제중 하나로 딥페이크 방지 기술 사업이 선정됐다.

딥페이크란 AI 기술을 이용해 어떤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특정 영상에 합성하는 기술이다. 최근 관련 기술이 발달하면서 연예인은 물론 주변 지인의 얼굴을 포르노 영상에 합성하는 범죄가 잇따르자 정부도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박사방 운영을 도운 ‘부따’ 강훈(18)도 일반인 딥페이크 사진을 유포한 혐의를 받아 지난 4월 검찰 수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 디지털 성범죄 관련 신속 대응을 위한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를 신설했다. 방심위는 해당 위원회를 통해 문제가 되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불법 자료를 24시간 이내 삭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1일부터는 AI 기술을 접목한 챗봇 ‘디지털성범죄정보 신고·상담톡’도 운영하고 있다.

방심위 관계자는 "디지털성범죄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유포 초기 적극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라며 "피해자들이 손쉽게 대응 요령을 확인하고 비대면·비공개 방식으로 안심하고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챗봇을 운영한다"라고 운영 취지를 설명했다.

디지털 환경 고려한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해

진행중인 정책 대부분이 피해 최소화에 맞춰져 있다 보니 근본적인 디지털 성범죄 뿌리 뽑기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연초부터 불거진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 심각성이 대두된 만큼 전반적인 성범죄 관련법 개정과, 필요하다면 신설법 제정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일 국회의사당에서는 일부 여성 정치인들이 21대 국회에서 ‘스토킹처벌법’을 우선 논의해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최근에는 물리적인 접근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스토킹을 시도하는 디지털 성범죄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과 여성의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관계자들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스토킹처벌법 제정 요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여성의당 제공

이날 발언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은 “20대 국회에서도 스토킹 처벌과 관련한 법안이 5개 발의됐지만 결국 임기 만료로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라며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스토킹처벌법을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 시키겠다”라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에 법무부는 지난달 20일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법제처에 제출했다. 2018년 5월 법무부 입법 예고를 거친 지 2년 만에 법령 심사를 받게 됐다. 법무부는 심사 후 법령 제정안을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제출된 법안의 핵심 내용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따라다니거나 지켜보는 행위, 각종 통신 수단으로 말이나 그림, 영상 등을 보내는 행위 자체에 대한 높은 수준의 처벌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스토킹 행위 자체만으로는 범죄 관계 성립 여부가 모호한 부분이 있었으나 해당 법률이 제정되면 스토킹 행위 자체만으로도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기존 스토킹 관련 처벌 수위는 10만원 이하 벌금 부과가 전부다. 이렇게 경범죄 취급을 받다보니 재발 위험이 높다. 특히 보복 범죄를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이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관련 법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 돼왔다.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고 흉기 등을 사용했을 시에는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높아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n번방 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관련 법 제정 열망이 큰 만큼 심사가 완료되는 대로 신속하게 후속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지난 2월 시작한 ‘사이버성폭력 4대 유통망 특별단속’ 활동 기간을 기존 6월 말에서 연말까지 확대했다. 경찰은 n번방 사건에 활용된 텔레그램을 비롯해 웹하드, 성인사이트, 다크웹 등 네 가지 유통망에 대한 집중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포함해 수백 명에 이르는 디지털 성범죄자가 검거 됐다. 아울러 전국 지방 경찰청에는 ‘사이버성폭력 전담수사팀’ 인력이 대폭 확충되고 전문 수사관이 배치되는 등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또 인터폴과 공조해 ‘아동성착취물 데이터베이스’를 공유하는 등 국제적 협력 시스템도 적극 활용해 나간다.

이용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조주빈의 휴대전화에서 전자지갑 3개를 확보했고 범죄 수익금으로 추정되는 400여만원도 발견했다”라며 “공범 18명에 대한 신병처리는 끝났으며 또다른 2명에 대해서는 수사 중”이라고 말해 박사방 사건을 비롯한 모든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척결 의지를 강조했다.

마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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