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스경제/ 이찬규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에드워드 홀(E.T. Hall)은 ‘문화를 넘어서’(1976)라는 책에서 문화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를 제시하였다. 의사소통 시 언어적 표현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저맥락 문화이고, 맥락이나 상황에 의존할수록 고맥락 문화로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왜 어떤 문화권 사람들을 만나면 더 편하게 느껴지는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예컨대, 고맥락 문화권의 특징은 메시지가 명확하게 기호화되지 않고 말 속에 숨은 의미가 더 많으며, 배경 정보가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고맥락 국가에 포함되어 왔다. ‘거시기’와 ‘가가가가?’로 대표되는 고맥락 소통 방식의 뿌리가 깊다. 농경 중심 사회와 유목 중심 사회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각각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를 형성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화권에서는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일이 유독 많다. 개인의 정체성은 집단에 뿌리를 두는 경향이 강하고, 사회적 권위가 의미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가별로 구분해 보면 대략 이러한 특성이 명확히 드러난다. 

이 표를 보면 세계의 갈등은 저맥락 문화와 고맥락 문화 간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이후 통신과 교통 수단의 발달로 두 문화권들이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고, 상대방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해할 시간도 없이 이루어진 접촉은 당연히 갈등을 낳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23년 현재 우리나라의 내부 상황은 어떤가?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문화권 중 어디에 속한다고 봐야 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둘 다’이다. 

가장 극심한 차이는 연령 구분에서 나타난다. 장년층 이상은 여전히 고맥락적으로 소통하는데 반해서 40대 이하의 젊은 층은 이미 저맥락 소통 방식이 주를 이룬다. 젊은층이 대부분 도시에 몰려 살다보니 지역적으로는 대도시와 농어촌 거주자 사이에서도 맥락 의존성에서 차이가 커지고 있다. 고맥락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과 저맥락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상대방 문화에 대한 이해 준비 없이 만난다면 그들 간에 소통이 원활히 될리 만무하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말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과 네가 알아서 눈치껏 내 말을 이해하고 행동하라는 사람이 어떻게 상대방에게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겠는가? 소통은커녕 적대감만 높아가기 일쑤다. 
  
저맥락 문화의 특성은 ‘언어적 명확성과 신뢰성’이다. 모든 것들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야 하며, ‘거짓말’은 쉽게 용인되지 않는다. 핵가족 속에서 동네 친구가 없이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윗세대보다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에 집중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일단 상대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그러다 보니 상호 간에 ‘척’하면 알아듣는 맥락이 형성되기 어렵다. 정치 영역에서 이러한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아직도 고맥락 소통 방식을 사용한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것을 정치적인 수사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한다. 저맥락소통 세대들은 그런 방식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문화는 어떤 방향으로 변해 가는가? 저맥락 문화에서 고맥락 문화로 변해갈 가능성이 있는가? 그러한 경우는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것은 핵가족 사회에서 다시 대가족 사회로 돌아갈 가능성만큼이나 희박하다. 문화 흐름의 방향은 고맥락에서 저맥락으로 변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의 소통 방식을 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 맞추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기성세대에서 저맥락 소통 방식을 받아들이고,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문제는 그 괴리가 너무 커서 장·노년층은 이 방식에 접근조차 하기 어렵다. 

누가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변화가 너무 빨랐고, 사회 전반적으로 소통 관리에 무심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데다가 극심한 입시 경쟁을 거친 세대들은 저맥락을 뛰어 넘어 새로운 비대면 소통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비언어적 소통 방식조차 크게 감소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결과를 낳아 저맥락 문화 속에서 개인 간의 고립을 가속화할 것이다. 여기에다 인공지능까지 끼어들게 되면 사람들 간의 소통은 초저맥락 문화의 방향으로 길을 틀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행복 지수를 더 낮추는 요인이 된다. 지금처럼 세대 간 분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주로 소통하는 소집단별 분열 양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가?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더 나은 길을 닦아 나아가야 한다. 더 극심한 갈등으로 모두가 불행해지는 디스토피아로 가기 전에 사회적으로 소통 관리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 

 

이찬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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